불안해서 쉬지 못할 때, 기다려보기로 했다

20251030 독서모임 - 어쩌다책모임

by 최성희

규방공예 장인이 운영하는 고즈넉한 찻집에 6명이 책을 들고 모였다. 각자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모임 자리였고 감사하게도 내가 모임을 진행하게 되었다. 6명 중 세 분은 처음 뵙는 분들이라 만남과 동시에 나의 낯가림 레이더망이 가동되었지만. 7년간의 독서모임 진행 경험을 살려 전혀 그렇지 않은 척을 하며 나름 자연스럽게 모임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낯가림이 심한데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독서모임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급기야 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을 때가 있다. 아마 타고나길 사람을 좋아하고 타인에게 관심이 많기 때문인 것 같고, 첫 만남에 느껴지는 긴장을 다른 이야기가 아닌 ‘책’으로 풀어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그리고 책으로 이어진 인연은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었고, 나에게 해를 끼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는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두렵고 약했던 내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이 날 모임에는 여섯 권의 책이 가방 안에서 꺼내져 책상 위로 올라왔다.


이진민 『언니네 미술관』

서윤후 시집 『나쁘게 눈부시기』

마유르 바예다·투샤르 바예다 『물속 깊은 곳으로』

헤르만 헤세 『데미안』

하우석 『내 인생 5년 후』

김은영 『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


특정 주제가 있는 자유도서 독서모임이 아니었기에 다양한 장르와 주제의 책이 소개되었지만, 모든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어 같이 흘러가는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


책마다 나누고 싶은 토론 주제를 하나씩 제안했다.


『언니네 미술관』 : 나에게 ‘카이로스’적인 시간과 장면 소개하기

『나쁘게 눈부시기』 : 보통이면서 특별한 나와 사회가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물속 깊은 곳으로』 : 나는 누구이고 어디로부터 왔는가

『데미안』 : 내가 깨야 하는 알은 무엇인가

『내 인생 5년 후』 :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 : 나만의 휴식 방법 공유하기


빠르게 앞으로만 가는 ‘살아내는 삶’ 보다는, 잠시 멈춰 서서 쉬어가기도 하며,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 30분 안에 모임을 마무리해야 했기에 여섯 가지 주제를 깊게 다 풀지는 못했지만, 나에게 가장 크게 울림을 준 질문은 다소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는 ‘나만의 휴식 방법’이었다.


잘 쉬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내면의 불안 때문에 그렇다는 이들이 많았다. 나 역시 ‘쉼’에 대해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안한 채로 푹 쉴 수 있을까 고민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기를 가져보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오히려 기분이 가라앉고 금세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마음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다. 잠시 쉬었기 때문에 새로운 에너지가 생긴 것일 테지만, 하고 싶은 것을 사부작사부작하면서 내 삶의 균형을 잘 잡아가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 아닐까 하는 나만의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문제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는 것, 그리고 그걸 또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욕심이 생각보다 자주 나를 지치게 했다. 그래서 다시 시간을 내어 요가와 명상을 하며 쉼의 공간을 마련하고 그걸 꽤나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독서모임 회원 중에 한 분이 의견을 냈다.

내 안의 불안함을 떨치고 잘 쉬는 것조차
결국 ‘기다림’ 아닐까요?


순간 ‘아!’하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독서모임을 하다 보면 이런 깨달음의 순간들이 가장 달콤하다.


나는 잘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불안할 때, 화가 날 때, 심지어 기쁠 때조차 기다리지 못하고 감정을 바로 드러낸다. 그게 나를 위한 일이라고, 내 마음에 대한 예의라고, 표출하지 않고 참아내는 건 오히려 나를 병들게 한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을 받아내야 하는 건 다름 아닌 내 가족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잘 표현하지 않았고 나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으므로. 대신 나의 어떤 모습도 받아주고 이해해 주는 가족들에게는 거침없이 나의 화와 불편한 마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걸 고쳐야겠다고 다짐 한 뒤 가장 먼저 했던 것이 감정을 직시하되 바로 표현하지 않고 기다려보는 것이었다. 기다리는 동안은 정말 힘들었다.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기도 했다. 하지만 15분 정도가 지났을까, 어쩌면 이렇게나 내 마음이 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화가 가라앉고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고작 15분이라니. 물론 모든 것이 좋아지거나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폭발할 것 같았던 감정을 폭발하지 않을 정도로 가라앉히는 데에는 아주 짧은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는 쉼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일상이 벅차고 힘들게 느껴져서 쉬려고 하면 어떻게 쉬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쉬어버리면 안 될 것 같은 원인 모를 불안함이 찾아왔다. 그래서 잠시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움직이며 결국 몸을 혹사시키고 있을 때가 많았다. 나에게 잘 맞는 쉼이라며 해왔던 요가 수련과 명상도 어쩔 땐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는 다른 회원님이 발제한 책이다 보니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제안해 주신 주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의 생각이 흘러갔을지도 모르겠다. 발제를 들으면서도 속으로 ‘그래도 나는 나름 잘 쉬고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나는 마음이 편안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쉼이 필요한 시기에 나의 감정을 마주하며 ‘기다림’을 가져보기로 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기다림을 통해 흘려보냈던 경험처럼, 불안해서 쉬지 못할 때, 모든 것을 멈추고 불안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봐야겠다.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진정한 쉼을 누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인생책숲 x 어쩌다책모임
찻집의 쌍화탕과 독서모임 회원님이 직접 만든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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