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멸종』 독서모임 발제 질문

엄마독서모임 ‘오롯이’ 13기 - 26년 1월 지정도서

by 최성희

‘오롯이’는 2021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운영되고 있는 엄마들의 온라인 독서모임이다. 기수마다 3개월 동안 매주 만나며, 비교적 결속력이 높은 소규모 모임으로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13기는 월요반과 화요반으로 나뉘어 운영되었고, 1월의 지정도서는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이었다.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를 묻는 책. 이 글은 그 책을 읽고 오롯이에서 나눈 발제와, 리더인 나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1. 책에 대한 전반적인 소감 (작가의 의견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및 인상 깊은 구절


『불안 세대』와 『도둑맞은 집중력』에 이어, 기술이 인간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왔는지, 특히 스마트폰과 SNS와 알고리즘,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어떤 부작용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이 책을 지정도서로 선정했다.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기술의 발전이 우리 아이에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가’는 엄마들의 관심 주제이기도 해서 모임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내용은 그러했으나 번역의 문제인지 술술 읽히지 않았다. 자주 멈추게 되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손에 꼽게 오래 걸려 완독 한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경험’을 주제로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저자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경험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다양한 연구와 사례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저자의 문제의식에는 깊이 공감했다.


다만 한편으로는, 직접경험을 충분히 할 수 있던 예전 시대의 타성에 젖어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미 시대는 바뀌었고 앞으로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머지않아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것을 간접 경험으로만 접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현실에 대한 분석과 우려는 충분했지만, 그다음 단계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마음에 오래 남는 문장들이 많아 여러 구절을 따로 표시해 두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문장을 몇 개 소개하고 싶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인본주의가 필요하다. 문화를 지배하는 공학중심의 과학만능주의에 도전할 새로운 인본주의, 공학•기계•알고리즘이 아닌 인간과 인간 경험을 중심에 둔 인본주의 말이다. (41쪽)

이제는 많은 아이가 자연, 놀이, 음악, 언어에 대한 첫 경험이 스크린 등 기술을 통해 매개되는 세상에서 자라고 있다. 그들의 장난감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반응을 기록한다. 베이비 모니터는 그들을 지켜본다. 기기는 그들을 추적하고 모니터링한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온라인 아이디와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만든다. 그들은 디지털 이미지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 속에서, 온라인 세계를 지배하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공유를 거의 의무화한 곳에서, 경쟁과 지속적인 표현이 일반적이고 대면 상호 작용의 가능성은 낮으며 익명의 괴롭힘이 쉬운 곳에서 성장할 것이다. 그곳은 역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세계다. 과거는 더 이상 멀고 단절된 무언가가 아니다. 페이스북이 "1년 전 오늘" 기능으로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중략) 이곳이 우리가 사는 세계다. 여기는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인가?(46-47)

아이들은 감정에 대해 배워야 하며, 그 방법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아이들은 진짜 상대방의 눈을 봐야 한다." 그는 페이스타임, 스카이프 같은 영상 채팅 서비스는 대면 상호작용과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76쪽)

소설가이자 기술 전문가인 로빈 슬로언은 한 인터뷰에서 아이폰 사용이 틈새 시간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줄을 서거나 기차를 탈 때 아이폰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백일몽을 꾸고,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끄적이는 데 더 많은 시건을 보낸다”라고 말했다. (154쪽)

그러나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경계적 경험에 대처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회의 중의 지루함 에서부터 아픈 사람의 고통을 목격하는 것과 단순히 버스에 갇혀 있는 것까지, 불편하거나 언짢거나 불안한 경험을 견뎌야 하는 삶의 중간적 순간에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169쪽)

2. 목차에 나와있는 주제들 중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험은 무엇인가요?

+ 어디까지 기술의 도움을 받고, 어디부터는 직접 경험해야 내가 나답게 혹은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4장 「기다림과 지루함의 기능」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언제 어디서든 손에 들고 다니며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있고, 즉각적으로 반응이 돌아오는 SNS가 있다 보니 안 그래도 성격 급한 나는 더더욱 기다림과 지루함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차분히 기다릴 줄 알고, 지루함마저 기꺼이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은 내 인간 생애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목차에 나온 주제들과는 별도로, 내가 특히 “기술이 대신하지 않았으면 하는 경험”으로 떠올린 것은 ‘자연’이었다. 지구 위에서 다른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연 감수성’이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경쟁과 효율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은 쉽게 뒷전으로 밀려나고, 때로는 성가신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류가 지구와 다른 생명들에게 해온 일을 생각하면, 우리는 분명히 더 많이 반성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런 자연감수성은 자연 속에서의 직접 경험을 통해 키워질 것이다.


모임에서 꽃을 꺾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보통 아이들에게 꽃을 꺾지 말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꽃을 한 번도 만져보지 않고,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지 않고, 어떻게 꽃이라는 생명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을까. 인간 사회의 질서를 위해 만든 규칙들이 오히려 지구상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감수성을 해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봤다.


3. 기술과 효율성, 속도가 중요한 시대에 잃어버린 나를 찾는 나(우리 가족)만의 방법이 있나요?


나는 요가와 명상을 한다. 모든 것이 빠르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시 멈추어 숨을 쉬고, 나를 온전히 느끼고 돌보는 시간은 ‘내가 살아 있다’ 내지는 ‘나답게 살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 준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조금 힘들어도 미디어를 최소화하고, 가족들과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려 노력한다. 다같이 화면을 보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게 온전히 관심을 기울이는 삶을 선택했다.


여행을 갈 때 일부러 필름카메라를 가져간다. 아직 어리지만 아이들에게도 일회용 카메라를 건넨다. 브런치에 쓴 치앙마이 여행기 중 일부를 첨부한다.

방금 찍은 사진과 영상을 실시간으로 SNS에 공유하는 시대에 이렇게 긴 기다림은 오히려 반갑다. 아이들이 그 기다림을 기대감으로 느끼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바라는 모든 사항은 사실 나 자신에게 바라는 점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세상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나만의 속도로 느리게 가도 괜찮다고, 아름다운 장면이나 물건은 충분히 들여다보며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해 보자고, 그 과정에서 사색하는 시간도 꼭 가지자고. 나 스스로에게 다시 이야기해 주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4. 이 책을 읽고 현실에서 개선하고 싶은 생활 방식은 무엇인가요? (아이에게 적용할 내용도)

+ 지금 우리 가족의 삶에 '의도적으로 남기고 싶은 경험'은?


나부터 바꿔야 한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줄이고, 그 자리에 멍하니 생각하는 시간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백을 남기고 싶다. 무엇이든 빨리 판단하고 서두르기보다, 조금은 느긋하게 맞이하고 싶다.


아이들에게는 스마트폰을 가능한 한 늦게 쥐여주고 싶다. 목표는 중학교 입학 이후지만, 아이의 기질과 또래 관계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보다도, 그 전까지 아이가 충분히 몸으로, 마음으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의도적으로 남기고 싶은 경험이 하나 있다. ‘아이들을 키우며 만난 동식물 도감’을 우리 가족만의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몇 년에 걸쳐 이어질 장기 프로젝트로, 숲에서 식물을 찾고, 벌레를 관찰하고, 이름을 알아보고, 기록하고, 정리하는 전 과정이 모두 하나의 직접 경험이 된다. 완성된 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우리가 겪을 ‘진짜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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