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독서모임 '오롯이' 13기 1월 자유도서 - 『단 한 번의 삶』
자유도서 독서모임은 회원들이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골라 발제하고 이야기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제가 1월 자유도서로 고른 책은 『단 한 번의 삶 - 김영하』입니다. 아래 내용은 모임에서 발제한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을 정리한 글 입니다.
<알쓸신잡>에 출연해 아는 게 많은 소설가로 인기를 끌기도 했던, 아는 게 많은 소설가 김영하의 산문집이다. 작가가 삶을 어떤 태도로 대해왔는지,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한다. 너무나 평범한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작가의 깊은 사유와 통찰, 뛰어난 글솜씨로 책을 이끌어가다 보니 몰입도가 높은 책이다.
•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돌며 함께 추는 왈츠와 닮았다. 기대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면 실망이 한 발 뒤로 물러나고 실망이 오른쪽으로 돌면 기대도 함께 돈다. 기대의 동작이 크면 실망의 동작도 커지고 기대의 스텝이 작으면 실망의 스텝도 작다. 큰 실망을 피하기 위해 조금만 기대하는 것이 안전하겠지만 과연 그 춤이 보기에도 좋을까? (61쪽)
• 요가는 신체 운동이라기보다 마음과 생각의 연습에 가까운 것 같다. 요가를 한다는 것은 날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일깨우는 일과 같다.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익숙해질 수는 있다. 그리고 모든 고통에는 끝이 있다. 요가 수업은 스스로 고통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잠깐 죽었다가, 문득 눈을 뜨고 다시 밖으로 걸어 나오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다른 운동도 비슷할 것이다. 다만 요가에는 가벼운 죽음의 의례, 사바사나가 반드시 있다. 사바사나가 시작되면 벌떡 일어나 매트를 걷고 나가버리는 이들도 있다. 바쁜 일이 있어서일 수도 있고, 운동은 끝났는데 왜 누워 있는지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일 수도 있다. 물론 나는 그 사바사나를 위해 요가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어나라고 할 때까지 고요하게 누워 있는다. 그렇게 누워 있으면 혹시 요가란 다가올 죽음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기초적인 명상 수련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104쪽)
• 살아보지도 않은 인생을 마치 잃어버린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184쪽)
• 지금 이 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것과 스스로 결정한 것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칵테일이며 내가 바로 이 인생 칵테일의 제조자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삶을 잘 완성할 책임이 있다. (187쪽)
• 물리학 쪽 책을 보다가, 이해는 잘 못하면서도 문득 위안을 받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과거, 현재, 미래라는 것은 그저 지구상의 인간을 위한 편의적 개념일 뿐이라는 설명이 그렇다. 또한 시간은 우리가 우주의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다 다르고, 어쩌면 거꾸로 흐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같은 것. 내가 다른 삶을 상상하거나 거기에 매혹되는 이유는 어쩌면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불가역한 시간이라는 개념에 익숙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약 여기에서 벗어난다면 좀 더 편안하게 미지의 미래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미래처럼 보이는 과거일 테니까. 이미 일어난 일인데 내가 아직 모를 뿐이니까. 크리스마스 날 아침까지 풀지 못하는 선물처럼, 놀라움을 위해 알려주지 않는 것뿐일 테니까. 그리고 어떤 세계에서는, 그것이 다른 차원이든 '사건의 지평선' 너머든, 아버지와 엄마는 죽지 않았고, 나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내가 그들의 부모였을 수도 있다. 그 밖에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내 삶이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를 무한한 삶들 중 하나일 뿐이라면, 이 삶의 값은 0이며(1/=0) 아무 무게도 지니지 않을 것이니, 존재의 이 한없는 가벼움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더는 단 한 번의 삶이 두렵지 않을 것 같다. 태어나지 않았을 때 나는 내가 태어나지 않은 것을 몰랐기에 전혀 애통하지 않았다. 죽음 이후에도 내가 죽었음을 모를 것이고, 저 우주의 다른 시공간 어디엔가는 내가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내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위안이다. (193쪽)
Q1. 인간의 관계가 ‘기대와 실망의 왈츠’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기대하고 있는 관계는 누구인가요? 그 기대는 나를 더 살아있게 하나요, 더 불안하게 하나요?
A. 20대 때는 자신에 대한 기대가 높은 만큼 타인에게 거는 기대도 높았다. 기대가 클수록 같은 크기의 실망으로 돌아왔고, 기대는 내가 스스로 한 것이었으므로 실망 또한 타인이 아닌 내가 만든 것임을 여러 번 확인하곤 했다. 기대라는 마음의 크기를 줄여야 실망도 작아진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 마음을 실제로 줄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도 기대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남편에게 나와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일상을 꾸려가기를 바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큰 기대였다. 다행히 남편은 나에게는 든든한 동반자였고,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좋은 아빠였다. 문제는 이번에도 내가 스스로 만든 기대였다. ‘나도 이렇게 하는데 여보도 이 정도는 해야지’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버린 것이었다. 그런 기대는 나와 남편 모두를 힘들게 했고, 결국 지나친 기대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내 마음을 많이 준’ 사람에게 기대를 한다. 이 정도는 해주기를, 내가 베풀었으니 상대방도 베풀기를. 그리고 어김없이 실망한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실망이 나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서로 사랑했다 멀어지고,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과정이 없다면 내 마음이 너무 메마르고 삭막하지 않을까. 김영하 작가가 “큰 실망을 피하기 위해 조금만 기대하는 것이 안전하겠지만 과연 그 춤이 보기에도 좋을까?”라고 말한 것처럼.
Q2. 내가 놓쳤다고 느끼는 인생은 어떤 모습인가요?
A. 아름다운 지구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으로 환경공학과에 진학했고, 국제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환경 관련 활동을 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국제기구에도 관심이 생겼지만, 나의 발목을 잡는 것은 언제나 영어였다. 열심히 공부해도 결과는 마음 같지 않았고 무엇보다 즐겁지 않았다.
영어 두려움을 극복해서 국제학부를 복수 전공해볼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렵 내 심장을 더 세게 뛰게 한 건 연극동아리와 학생회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기획하고 움직이고,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내는 일이 좋았다.
영어 정복을 위해 영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결국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배울 기회는 없었다. 그 사실을 오랫동안 별일 아닌 것처럼 정리해두고 살았다. 내가 선택한 삶이니, 지금의 삶이 최선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하지만 여러 나라를 다니며 지금까지 쌓아온 능력을 펼치는 여성들을 보면 유난히 멋있어 보였다. 굳이 꺼내고 싶지 않던 마음이었는데 20대 초반에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었나 보다.
20대 이후로는 오롯이 나 혼자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했기에, 그런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 나만의 ‘단 한 번의 삶’에 큰 애틋함을 느낀다. 그래서 더더욱 뒤돌아 후회하고 싶지 않고, 살아보지 않은 삶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면하는게 아니라 그저 즐겁게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때 이런 결정을 내렸다면 어땠을까.” 이런 상상이 앞으로 내가 내릴 결정에 따뜻한 지혜를 건네줄 것이라 생각하며.
Q3. 이 책은 어떻게 더 잘 살까 보다, 어떻게 덜 두려워하며 살까를 묻는 책 같아요. 요즘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요?
A. 요즘의 문제라기보다는, 아주 오래된 두려움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사람들로부터 외면받는 것을, 무리에서 밀려나는 것을 두려워해왔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사실은 혼자가 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에 더 가까웠다.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삶은 숨 막히게 싫어하면서도,
그 ‘남들’ 사이에 속해 있고 싶어 했다. 타인과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도 있을 텐데, 늘 관계와 인정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이 모순은 꽤 오랫동안 나와 함께했고 익숙한 생각거리였다.
관계에 있어서 이전보다는 많이 자유로워졌지만, 나는 타고나길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빛나고 나다워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만 살짝 걷어내면, 앞으로 더욱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두려움을 살짝 걷어내는 방법으로 일부러 혼자가 되어보고,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견뎌본다. 명상이나 몸을 움직이는 운동으로 안쪽에서부터 힘을 채워본다. 그렇게 채운 에너지를 가지고 다시 사람들 속으로 돌아온다. 조금 덜 불안한 얼굴로, 조금 덜 애쓰는 마음으로.
나의 ‘단 한 번의 삶’은 그렇게 나만의 속도로 나답게 즐기며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