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도 유치원 졸업, 축하해요!

여덟 살 세 아이와 떠난 졸업여행

by 최성희

첫째가 유치원을 졸업했다. 나의 첫 번째 아가, 나를 처음으로 엄마로 만들어줬던 아기가 내 명치 높이만큼 키가 자라더니 곧 초등학교에 입학한단다. 나는 아직 학부모가 될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 같은데, 아이는 벌써 책가방을 멜 준비를 한다.


새로운 교실,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규칙들. 삶의 한 단계를 건너가기 직전,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이미 자기만의 작은 용기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아이들에게 지금만 해볼 수 있는 경험과 추억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아이 친구 두 명과 함께 유치원 졸업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엄마들이 짜놓은 일정에 아이들을 태우는 여행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여행이길 바랐다. 여행지 후보를 몇 군데 제안하고 나머지는 아이들에게 맡겼다. 수원역에서 기차로 갈 수 있는 곳 세 군데를 제시하자, 아이들은 잠시 웅성거리더니 금세 의견을 모았다.


전주!


최종 결정이 꽤나 단단하고 진지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전주로 향하기로 했다.


여행지를 정한 뒤 아이들은 달력을 보며 날짜를 세고,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졸업여행 가요!” 하고 자랑했다. 한 친구는 전주 관련 책을 사서 읽은 후, 가보고 싶은 곳을 미리 정해 보기도 했다. 준비물도 스스로 적어보고, 짐도 직접 쌌다.


2월 말, 아직 겨울 기운이 남아 있을 시기였지만 전주역에 내리자 놀랍도록 따스한 햇살이 우리를 맞이했다. 마치 이번 여행의 성공을 예견하는 것 같았다. 여행 내내 온화한 날씨가 우리의 여행을 도왔다.


한옥마을 중앙에 자리한 독채 한옥 숙소에 짐을 풀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이들은 동시에 “우와!” 하고 외쳤다. 테라스에 올라가 기와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작은 마당을 뛰어다니며 여덟 살만의 놀이를 했다. 첫날은 밖에 나가지 않고 숙소에서만 놀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풍선 터뜨리기를 한 뒤 선물로 받아온 피리 뿅망치를 숙소 안에서 불고 두드리며 한바탕 음악회가 벌어졌다. 엄마들의 귀는 아팠지만, 아이들의 여행은 이미 숙소에서 완성된 것 같았다.


아이들은 경기전에서 태조의 어진을 보고, 한복을 빌려 입고 오목대에 올랐다. 누군가는 치맛자락을 붙잡고 계단을 오르고, 누군가는 한복이 불편하다고 투덜대고, 누군가는 왕이 된 것처럼 뒷짐을 지고 다니며 어깨를 으쓱했다. 한옥마을 지도를 펼쳐놓고는 “여기 가볼까?”, “여긴 어때?” 하며 진지하게 회의를 하기도 했다. 고개를 맞대고 지도를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며, 언제 이렇게 컸을까 싶었고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의견을 따라 수제 초코파이도 만들고, 숲 속 족욕 카페에서 뜨끈한 물에 발을 담갔다. 안 그래도 귀여운 발이 물에 살짝 불어 더 귀여워졌다. 족욕을 하며 음료를 마시고 수다도 떠는 모습이 꼭 작은 어른 같았다가, 물을 튀기며 장난을 칠 땐 또 마냥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였다. 해보고 싶은 것을 하나씩 해내다 보니 집으로 돌아갈 기차 시간이 성큼 다가왔다.


세 아이는 함께 있기만 해도 즐거워했다. 까르르, 까르르.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감사하게도 크게 다투지 않았다. 서로 배려하고, 기다리고, 맞춰가며 여행을 완성했다. 아이들이 키만 자란 것이 아니라 마음도 훌쩍 자랐구나 싶었다.


아이들이 추억을 차곡차곡 쌓는 동안, 엄마들도 덩달아 여덟 살이 되었다. 모두 전주가 처음은 아니었는데도, 아이들과 함께한 전주는 또 다른 도시였다. 더 느리고, 더 따뜻했고, 더 반짝였다. 물론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무거운 짐, 쉴 틈 없는 질문 세례, 체력의 한계. 하지만 그래서 이번 여행이 더 즐겁고 의미 있는 추억으로 남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곧 초등학생이 되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늘 즐겁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낯설고, 어렵고, 속상한 순간도 찾아오겠지.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은 이번 여행에서처럼, 친구들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리라. 함께 웃고, 때로는 부딪히고, 다시 손을 잡으며 자기만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 믿는다. 배움이 성적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경험과 관계 속에서도 성장한다는 것을 차근차근 깨달아가기를 바란다.


이제 막 유치원을 졸업한 여덟 살 세 아이의 작은 여행, 문득 이 여행은 아이들만큼이나 엄마들에게도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키우느라 애썼고, 앞으로도 아이들만큼이나 성장할 엄마들을 위한 여행.


엄마들도 유치원 졸업, 축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