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방향이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업을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시작이 제로웨이스트 숍이 될 줄이야.
남편과 우리는 동네의 작은 제로웨이스트 숍을 인수하기로 했다. 결정을 내리고 나서도 한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우리가 정말 이걸 한다고?’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되뇌었다. 괜히 시작했다가 에너지만 소진하고 상처만 남은 채 마무리되는 건 아닌지,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리기도 했다.
사실 완전히 생뚱맞은 선택은 아니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이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반 전, 우리는 아무 연고 없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아는 사람 하나 없던 그곳에서 남편의 지인 한 분이 유일한 연결이었다. 그분이 제로웨이스트 숍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다. 멋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궁금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이사를 가기 전인데도 나 혼자 가게에 찾아가기도 했었다.
환경을 전공한 우리 부부는 동네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했다. 남편은 지금도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고, 나 역시 그 가치에 깊이 공감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곳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가게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머물고, 이야기를 나누고, 삶의 방향을 함께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한편 나는 오랜 시간 독서모임을 운영해 왔다. 온라인으로 엄마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언젠가는 ‘독서모임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이름은 뭐가 좋을지, 어떤 책장이 놓일지, 어디에 작은 테이블을 둘지, 사람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까지. 그 상상은 꽤 구체적이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현실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월세는 어느 정도여야 할지, 공간은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그래서 종종 가게를 운영하는 지인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곤 했다.
여기는 월세가 얼마예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무례했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나는 오래도록 ‘내 공간’을 꿈꾸고 있었다.
남편의 지인은 그 제로웨이스트 숍을 참 정성껏 운영해 왔다. 가치를 중심에 둔 가게를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그 시간이 더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게는 어느 순간 무인으로 전환되었고, 그 상태로 1년 넘게 유지되다가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사장님께는 좋은 이유로 내려놓는 결정이었기에 마음이 아프기만 한 소식은 아니었지만, 그런 가치를 담는 공간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아쉽게 다가와 가슴을 쿵 치게 했다.
그때였다. 그 공간을 우리가 이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떠올랐다. 처음부터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물건을 파는 일에는 관심이 없던 우리가 해도 되는 일일까’라는 질문이 더 컸다. 하지만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건 완전히 새로운 길이라기보다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오던 길이 만나는 지점처럼 느껴졌다.
남편에게는 오랫동안 지역에서 환경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고민이 있었고, 나에게는 사람들을 가치와 책으로 연결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게다가 늘 고민이었던 월세도 저렴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 공간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이어가 보기로.
앞으로 이 공간은 제로웨이스트 숍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작은 장이 될 것이다. 독서모임을 열고, 아이들과 책을 읽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간을 나누는 일. 우리가 오랫동안 그려왔던 장면들을 이제는 실제로 하나씩 펼쳐보려고 한다.
아직 두려움이 크다. 시간의 흐름에 떠밀리듯 사업자 등록도 하고 공간 계약도 마쳤지만, 그 외에는 되어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가끔은 ‘이렇게 준비 없이 시작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꽤 큰 스트레스로 다가와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편과 나를 믿는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쌓아온 시간들이 있고, 그 시간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머리로 아는 것보다 몸으로 겪는 경험이 더 깊은 배움이 된다고 믿는다.
아직 낯설고 서툴지만, 계속해서 우리의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우리는, 아마 지금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얼굴로 지금의 이 작고 초라한 시작을 떠올리며 미소 짓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