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독서모임 ‘오롯이’ 14기 - 4월 지정도서
‘오롯이’는 2021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엄마들의 온라인 독서모임이다. 기수마다 3개월 동안 매주 만나며, 비교적 결속력이 높은 소규모 모임으로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14기는 나의 개인적인 상황으로 인해 6개월 동안 월 1회 모임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기존 월요반과 화요반 회원 중 참여가 가능한 분들과 함께 꾸렸고, 돌아가며 지정도서 선정·발제·모임 진행을 맡기로 했다. 3월 지정도서는 멜 로빈스의 『렛 뎀 이론』, 그리고 4월 지정도서는 크리스 나이바우어의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였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의 인지 신경심리학자로, 우리가 흔히 ‘자아’라고 믿는 개념이 사실은 좌뇌가 만들어낸 하나의 환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겪는 많은 고통과 오해 또한 이 ‘이야기하는 좌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 통찰은 ‘나에 대한 집착이 불행의 시작’이라는 동양철학의 관점과도 묘하게 맞닿아 있다.
마침 나는 여성들을 위한 내면 탐구 과정이자 자기 치유의 여정인 ‘여성의 지혜’ 3기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는 명상, 모닝페이지, 나를 위한 한 끼 식사, 햇빛 산책과 같은 일상적인 실천을 이어가며 도반들과 경험을 나눈다. 주 1회 줌으로 만나 안내자님의 지도 아래 공부를 이어갔고, 특히 이번 기수에서는 여성주의 타로인 마더피스(Mother Peace)를 새롭게 접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안내자님은 나에게 어떤 예술 활동에 흥미가 있는지 물으며, 매뉴얼이나 분석처럼 좌뇌를 쓰는 활동이 아닌 우뇌를 사용하는 활동을 해보라고 권했다. 그때까지의 나에게 ‘뇌’란 그저 머리 안에 들어있는 당연한 신체 기관일 뿐, 좌뇌와 우뇌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인식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질문을 계기로 나는 그동안 좌뇌를 중심으로 살아왔고, 우뇌를 사용하는 활동에는 익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좌뇌를 ‘때때로 완전히 틀린 설명을 만들어내는 해석 중독자’라고 표현한 부분이 특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인간이 느끼는 대부분의 고통이 좌뇌에서 비롯되며, 좌뇌가 만들어낸 ‘자아’ 역시 실체가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 책을 읽는 동안은 물론이고 독서모임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뇌 이야기’를 주변에 하고 다닐 만큼 흥미롭고 설레는 주제였다.
이번 책을 제안해 주신 회원님이 준비해 온 발제 질문은 세 가지였다.
Q1. 직감이 맞았던 순간이 있나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뭔가 이상한데…" 하는 느낌이 결국 맞았던 경험이 있나요? 반대로 직감을 무시하고 후회한 적은요? 그 '느낌'이 바로 우뇌의 목소리였을 수 있습니다.
A. 남편과 결혼을 결심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또래보다 이른 나이였고, 경제적으로도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주변에서는 그 결정을 많이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이라면 평생 나를 사랑해 줄 것 같다는 느낌, 함께라면 행복할 것이라는 직관이었다.
당시에는 좌뇌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었던 그 감각이, 1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선택 중 하나였다고 느껴진다.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편, 그리고 그와 함께 만들어온 네 가족의 삶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행복이다.
Q2. '나'라는 캐릭터를 바꿀 수 있을까? 혹은 바뀐 경험이 있나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오래 믿어왔던 특징이 있나요? 혹시 그 믿음이 바뀐 경험이 있으시다면, '나'라는 캐릭터가 정말 고정된 것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A, 나는 지금도 여러 개의 캐릭터를 가지고 살아간다. 남편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 부모님의 딸이자 며느리. 역할에 따라 나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동네 언니들과 함께 있을 때의 나와 독서모임 리더로서의 나는 꽤 다르게 느껴지지만, 그 모든 모습이 결국 나다. 그래서 ‘나’라는 캐릭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과 선택에 따라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3. 생각을 덜 믿는 게 가능할까?
이 책은 "생각을 전부 믿지 마라"라고 합니다. 하지만 생각 없이 살 수 있을까요? 실제로 머릿속 수다를 줄여본 경험이 있나요? 명상이나 운동, 취미 활동 중에 그런 순간이 있었다면 나눠주세요.
A. 나는 오랫동안 좌뇌를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생각이 곧 정답이라고 믿었고, 직관은 근거 없는 것이라 여겼다. 늘 머리로 판단하고, 생각이 많아 스스로를 쉽게 지치게 하곤 했다.
그런 내가 아이 둘을 낳고 난 이후, 명상과 요가, 운동 같은 활동에 자연스럽게 끌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 안의 균형이 필요했던 것 같다. 외부로 향하던 에너지를 잠시 거두고 내 안을 바라보는 시간은, 나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다. 요가와 명상이 우뇌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지금의 변화가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내가 적어둔 인상 깊은 구절
- ‘자아’란 실재하는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소설 속 등장인물에 더 가깝다는 사실이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당신이 알고 있다고 믿는 당신은 실재가 아니다. (28쪽)
- 해석한다는 건 곧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이며 이는 필연적이다. 온도가 정확히 몇 도일 때 차가움이 뜨거움으로 바뀔까? 당신은 어떤 순간이 되어야 상처받았다고 느끼는가? 재앙이라 부를 수 있는 순간과 실패가 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가난에서 부가되는 시점은? 행복과 슬픔의 경계는 어디일까?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 사실을 인식하기만 해도 엄청난 변화가 생긴다. 해석 장치가 판단을 이용해 끝없이 범주를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순히 마음에 담고만 있어도 판단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쉽게 말해 해석 장치를 의식하고 있으면 그 해석을 심각하게 받아들일지 말지 선택권이 생긴다. 모든 사람의 뇌는 끊임없이 해석 활동을 하고, 그 해석은 매우 주관적이며, 부정확하고, 어쩔 땐 완전히 틀렸다. 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내 말이 진실이야, 내가 맞아"라고 말하는 대신, "이건 내 의견일 뿐이야." 또는 "그냥 내가 보기에 그런 거야."라며 자신의 해석과 현실을 구분한다. 판단이란 단순히 모래사장에 그어진 또 다른 선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내 말이 진리야."라는 자세로 덤벼든다면 당신은 속으로 빙긋 웃으며, 그가 좌뇌에 지배당하고 있고 주인이 아닌 하인으로 지내고 있다는 걸 이해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행동이나 태도를 딱히 사적인 감정으로 볼 필요가 없다. 그건 그저 생물학적인 기능일 뿐이다. 비록 당사자는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이렇듯 아주 살짝만 관점을 바꿔도 나 자신을 비롯한 다른 이들과 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답이 나온다. (82-83쪽)
- 생각한다는 건 그 자체로 범주화하는 과정이다. 거기에 예외는 없다. (119쪽)
- 아무도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때, ’나‘는 어디에 있는가? (125쪽)
- 요가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왔으며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문헌에도 등장한다. 요가는 당신을 우뇌의식으로 이끈다. 몸을 움직이고, 어떤 동작을 수행할 때 기분이 좋고,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온전히 알고 있지만, 거기에 '생각'이 끼어들 틈은 없다. 사실 요가란 '이 순간에 머무름'으로써 완성된다. 굳이 어렵게 얘기하자면 요가를 할 땐 해석 장치의 교묘한 간계에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 요가 수행이 무의식적이라고 말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요가의 어원은 '결합 union’이다. 당신의 진정한 자아와 우주의 모든 것의 결합. (140쪽)
- 마음챙김 명상이 좌뇌와의 동일시를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의 해석 장치는 너무나 굳건하니, 항상 마음을 좀 챙기고 다니는 게 좋을 듯하다. (144쪽)
- 우뇌에는 좌뇌의 이해력을 뛰어넘는 어떤 지성의 원천이 있고, 이것을 신경과학이 처음으로 발견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182쪽)
- 직감을 미신으로 여기는 사람은 전형적으로 좌뇌와 본인을 심하게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해석적 마음은 직감을 신뢰하지 않지만 나는 직감이 또 하나의 유용한 의식 형태라고 생각한다. 단지 ’주인’이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으니,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예 감을 잃어버리거나 이것이 의식의 믿음직한 부분이 아니라 여길 뿐. (185쪽)
- 최근 연구에서는 직감이 ‘무의식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며 어떤 면에선 좌뇌가 추구하는 지식보다 더 우수한 형태의 지능일 수 있음을 밝혔다. (185쪽)
- 우뇌가 부분보다 전체를 보며 좌뇌가 알아차리지 않은 것까지 감지한다. 우뇌는 좌뇌 모르게 좌뇌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우뇌가 좌뇌는 감지하지 못하는 정보를 감지하고, 그것을 영감이나 직감이라고 불리는 형태로 의식 표면에 올린다. 결국 좌뇌는 자신이 어떻게 그 정보를 알고 있는지 설명도 못하고 이해도 못한다. (187-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