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명상도 어려운데, 춤 명상이라니

몸을 움직이며 진정한 나를 만나는 시간

by 최성희

싱그러운 4월,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주말이라 모두가 나들이를 떠나야 할 것만 같은 날씨에 나는 대전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광명역 인근 주차장은 모두 만차였고, 몇 바퀴를 빙빙 돌다 결국 기차를 놓쳐 식은땀까지 흘렸지만, 곧바로 다음 기차 취소표를 발견해 예매해 준 남편 덕분에 다시 웃으며 대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는 어쩐지, 벌써 작은 기적 하나를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안내자 타라 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봄이었다. 2023년 4월, 엄마독서모임 ‘오롯이’ 회원들과 대전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하기로 했고, 다들 낯설지만 궁금했던 ‘명상’을 경험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찾은 곳이 타라님이 운영하시던 ‘녹색리듬’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고요히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경험했다. 낯설고 어색했지만 동시에 깊이 흔들렸다. 그제야 이렇게 천천히, 다정하게 나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했음을 깨달았다. 명상을 꾸준히 이어간다면 조금 더 마음이 넓은 사람이, 그리고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집으로 돌아와서도 어설프게나마 유튜브를 따라 명상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후 타라님은 ‘녹색리듬’이라는 공간을 정리하셨지만, ‘여성의 지혜’라는 이름의 온라인 써클을 통해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계속 나누고 계신다. 첫 경험이 강렬했던 탓일까. 나는 1기부터 현재 3기까지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

대전에는 그 이후로도 한 번 더 갔다. ‘오롯이’ 10기 오프라인 모임을 다시 대전에서 열었고, 그때는 타라님께 ‘자기 변형 게임’ 진행을 부탁드렸다. 그 시간 역시 따뜻했고, 깊었으며, 어딘가 단단해지는 느낌을 남겼다. 그렇게 대전은 나에게 ‘나를 만나는 도시’, 갈 때마다 조금씩 성장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아주 기분 좋은 곳이 되었다.


이번 대전행의 이유는 ‘SheDance Shakti’라는 이름의 워크숍에 참여하여 움직임 명상을 처음으로 접해보기 위함이었다. 타라님의 설명에 따르면 SheDance는 ‘여성의 몸에 대한 가부장적 통제와 억압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하고 진정한 움직임으로 신성한 여성성을 깨우는 여정’이라고 한다. 솔직히 내가 타라님의 안내에 따라 하고 있는 것들을 설명하는 것이 늘 어렵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엇인지 정의하려 하기보다, 그날 내가 느꼈던 것들을 흘러가는 대로 붙잡아두고 싶어서.


돌이켜보면, 2023년 처음 만났을 때도 타라님은 춤 명상을 권하셨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명상도 어려운데, 춤을 추면서 명상을 한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절대 못 할 것 같았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녹색리듬에 처음 갔을 때도 함께였고, 이후로도 독서모임과 여성의 지혜 모임 둘 다 함께 쭉 이어오고 있는 회원님께서 먼저 접해보시고 추천을 해주셨다. 그때만 해도 속으로는 시큰둥했다. 하지만 ‘여성의 지혜’를 3기까지 이어가며 나도 모르게 이번 기회에는 꼭 움직임 명상을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억지로 만든 결심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강하게 올라오는 감각이었다.


워크숍은 소소한 간식을 나누고, 마더피스 타로카드를 뽑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어서 함께 써클 댄스를 췄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차분해지고, 함께 모인 여성들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눈을 감고 음악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서로를 볼 수 없었고, 나 역시 나를 볼 수 없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어서 그랬는지 예상보다 마음이 편안했다. 특히 이곳에서는 누구도 서로를 평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어느 순간 몸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아니라 ‘이렇게 움직이고 싶다’는 감각이 먼저였다. 나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몸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내 안에 있던 감정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설명하기 어려운 이미지들, 기억들, 감각들. 때로는 내면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것 같았고,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해방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지금까지 내 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 머리로 이해하려고만 하고, 직관을 눌러버리고, 겨우 올라온 감각조차 외면하면서.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은 이 몸뚱이 하나인데, 언제든 흔들리고 사라질 수 있는 ‘자아’라는 개념에 매달려 왜 그토록 나를 모질게 몰아붙였을까. 조금 더 나로서 존재할 수 있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허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자유롭게 사랑하고 연민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이 경험 하나로 삶이 당장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내일이 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또다시 흔들리고, 때로는 잊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도, 다시 돌아올 내 몸이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묵묵히 걸어 나간다. 조금씩 깨닫고, 또 잊고, 다시 떠올리는 반복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단단해질 것이다.

이 글을 마치며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왜 좋았을까?

여전히 명확한 답은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날 나는 대전에서 머리가 아닌 몸으로, 생각이 아닌 직관으로 ‘나’를 만났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귀하고 감사했던,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