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마을에 우리가 잠시 머물렀을 뿐이야

<아이들과 함께 떠난 치앙마이 2주 여행> 5편

by 최성희

13마리의 코끼리들과 꿈같은 하룻밤을 보냈다. 마을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커다란 코끼리들이 우리를 반겨주었고, 함께 산책하고 목욕도 시켜주었다. 숙소 문만 열면 바로 앞에서 걸어 다니는 코끼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아침에는 우리 방으로 모닝콜을 해주러 왔다. 2주간의 치앙마이 여행 중 가장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이었던 하루. 그렇게, 우리는 코끼리 마을에 잠시 머물렀을 뿐이었다.


치앙마이 숙소를 검색하다 보면 ‘코끼리 호텔’이라는 낯설고 흥미로운 숙소들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타완 리버사이드(Tawan Riverside)’. 코끼리를 타거나 쇼를 관람하는 방식이 아닌, 학대 없이 보호받는 코끼리들과 교감할 수 있는 곳이라는 소개에 마음이 움직였다. 방은 단 1개, 그것도 딱 하루만 예약 가능했다. 망설일 겨를도 없이 서둘러 예약 버튼을 눌렀다.


도착하자마자 커다란 코끼리 두 마리와 아기처럼 보이는 작은 코끼리 한 마리가 우리를 반겨준다. 체크인을 하느라 바쁜 나를 두고 이미 코끼리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코끼리 코 앞에 가있는 남편과 아이들의 뒷모습에 기분 좋은 웃음이 나온다. 체크인 포인트에서 숙소로 들어가려면 전혀 안전해 보이지 않는 출렁다리를 지나가야 했다. 새로운 숙소가 설레어서였을까, 출렁다리가 무서워서였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이들 손을 꼭 붙잡고 출렁다리를 지나 하룻밤 묵을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 포인트에서 만난 코끼리(왼쪽)와 출렁다리(오른쪽)

깊은 산속에 있는 숙소라 시설이 낙후되고 벌레가 많아서 잠을 잘 수 없었다는 후기가 많았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들어간 작은 방갈로. 그런데 이게 웬걸, 들어가자마자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푸르름에 압도되었고, 그 장면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2주간의 치앙마이 여행을 통틀어 손에 꼽힐 만큼 강렬한 순간. 특별할 건 없었다. 창문에서 보이는 나무들의 푸르름과 그 위로 내리쬐는 햇빛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을까. 쾌쾌한 매연 냄새 가득했던 님만해민에서 벗어나 자연 속으로 들어온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담한 방갈로의 매력에 빠져 쉬고 있는데, 아이들이 문을 열고 나가더니 환호성을 지른다. “엄마! 엄청 큰 코끼리들이 막 걸어 다녀!”

도착한 방갈로에서 창문 밖으로 펼쳐진 장면. 그 곳에서 찍은 필름사진.

크고 작은 방갈로들이 위치해 있는 산 속은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리조트인 동시에 코끼리들이 살아가는 마을이기도 했다. 13마리의 코끼리들이 이곳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우리는 코끼리와 트래킹을 하고 목욕도 시켜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코끼리를 가까이에서 보살펴주는 분과 가이드 역할을 하는 분이 우리 가족 가까이로 코끼리를 데려왔고, 다 함께 출렁다리 밑으로 흐르고 있는 강으로 향했다. 목욕 서비스를 받을 코끼리가 강에 들어가자마자 응가를 하는 장면을 마주해서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이곳은 어디까지나 코끼리들의 삶터이니 자연스러운 척 받아들일 수밖에.


살면서 처음 만져본 코끼리의 피부는 상상보다 더 두껍고 우둘투둘했으며 꽤나 긴 털도 만져졌다. 진흙으로 마사지를 해주면 좋아한다고 해서 흙을 묻혀 마구 비벼주니 코끼리는 코로 물을 뿌리고 ‘코 뽀뽀’로 화답했다. 나는 사람과의 스킨십도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 아무래도 코끼리의 뽀뽀는 받아줄 수 없었고, 나 대신 남편이 아주 큰 ‘쪽’ 소리와 함께 뽀뽀를 받았다. 평소 사람보다 동물과 식물, 자연을 더 사랑하는 것 같은 남편은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코끼리와 함께 행복한 남편

엄마 코끼리 매노이(Mae Noi), 그리고 아기 코끼리 샌디(Sen Dee)와 함께 산책도 했다. 94년생인 매노이와 매노이의 새끼인 22년생 샌디를 보고 있자니 90년생인 나와 21년생인 우리 딸을 보는 것 같았다. 먼저 들판에서 먹이를 주면서 가까워졌다. 만 3살인 딸은 자기 몸집보다 한참 큰 코끼리들이 무서운지 줄곧 안겨있었지만, 남편과 아들은 천천히 코끼리 모녀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들판에서 먹이를 다 먹으니 어슬렁어슬렁 산속으로 들어간다. 매노이와 샌디는 길이 아닌 곳으로 자유롭게 들어가 나무나 풀을 뜯어먹기도 했고, 잠시 멈춰서 젖을 먹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저 그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가며 두 모녀 코끼리의 일상을 함께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서 내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은 또 창문 밖으로 코끼리가 보인다며 뛰쳐나간다. 코끼리 가족들도 하루 일과를 마쳤는지 산 중턱 흙 위에서 자유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는 표지판 바로 뒤까지 들어가 코끼리들의 자유시간을 훔쳐본다. 나는 그런 코끼리들을 바라보며 뜨개질을 하기도 했는데 그 순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바로 앞에서 평화롭게 거니는 코끼리들이 보이고, 그곳에서 뜨개질이라니. 비현실적인 순간이 그때뿐이었겠는가. 사실 타완 리버사이드에 머무르는 모든 순간이 꿈같았다.

코끼리의 자유시간을 훔쳐보는 내복쟁이들

다음날 아침 약속된 시간에 또 다른 코끼리가 우리 방갈로 앞으로 모닝콜을 왔다. 창문 밖으로 코끼리에게 먹이를 한 푸대기 주는 시간이었기에 말만 모닝콜이지, 실제로는 코끼리 조식 타임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전날 코끼리를 실컷 보고, 만지고, 교감하는 시간을 충분히 보내놓고도 또 행복해했다. 체크아웃을 하러 숙소에서 나와 다시 출렁다리로 향하는 순간까지도, 여기저기에서 코끼리들이 느릿느릿 걸어 다니던 곳.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가방을 멘 채로 코끼리 뒤를 따라 걷기도 하고 한 번 더 토닥거려주기도 했다. 혹여나 우리의 머무름이 코끼리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았길 바라며, 우리에게 꿈만 같았던 시간을 선물해 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가득 담아, 코끼리들아 안녕!

모닝콜을 빙자한 코끼리 조식타임과 떠남이 아쉬운 아빠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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