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계형 한부모 워킹맘이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가지 역할을 감당해 가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외롭다. 내 새끼 어떻게 될세라 홀로 알을 품듯 누구와 교대할 수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자식은 오로지 내 몫이라 생각해 내가 다 품어야 했기에 아이를 품고 있는 어미의 마음은 늘 무거웠다.
일하러 가기 전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아이가 걱정되어 혼자 학교 가는 법, 혼자 밥을 먹는 법, 혼자서 학원 시간에 맞춰서 가는 법, 혼자서 씻는 법 등을 알려주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을 몸 구석구석 온도로 알아차린 건지 딸은 이따금 투정은 부렸지만, 알아서 잘 해주었다. 퇴근할 때부터 아주 아팠던 어느 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속내를 모르던 딸은 어딘가 힘들어 보이는 엄마에게 더 종알종알 거렸다.
아버지 전화다. “니만 사는 게 힘드나? 나도 힘들어 죽겠다. 다른 사람 다~~ 힘들게 산다.” 안 되는 줄 알면서 또 아버지에게 위로 받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했나 보다. 단지 위로를 받고 싶었을 뿐인데 그 말들은 어느새 내 잘못으로 돌아왔다. 이런 익숙한 그 기억들은 40년 동안 오래 묵은 내 상처다. 내 안에 결핍과 슬픔을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안다 해도 거기까지다.
울컥해진 마음을 달래러 들어간 아이 방에서 발견한 것은 곰팡이 핀 빵, 강아지가 소변을 봐서 누렇게 변해버린 이불, 과자 부스러기였다. 딸을 불렀다. 엄마의 무서운 표정을 보고 딸은 직감했는지 내 눈치를 보는 듯했다.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은 눈물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먼저 방으로 들어가라고 얘기했다.
눈물 흘릴 자격도 없는 내가 눈물이 난다.
마냥 미안해도 모자랄 엄마가 눈물이 난다.
설거지를 하며 소리를 참아내며 울고 있는 나에게 딸이 조용히 다가왔다.“엄마 울지마.“ 아주 작디작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겼다. 딸의 심장이 쿵 쿵 쿵 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뛰고 있는 아이의 심장소리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렇게 딸과 나는 고비를 넘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고비는 있겠지. 넘기만 하면 되는 거야.그거 넘으라고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