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주는 이름
누구나 태어나면서 이름을 얻는다. 나를 설명하기도 전에 누군가로부터 이름이 지어지고 불린다. 그리고 그 이름이 나를 설명하도록 살아간다.
어릴 때 우리 교회에는 지혜가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큰 지혜, 작은 지혜 그냥 '지혜'로 부르곤 했었는데 다행히도 나는 그냥 '지혜'였다.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커가면서 흔한 내 이름이 점점 더 싫어졌다. 그래서 누가 이름을 물으면 끝자만 가르쳐주기도 했고, 친구들은 그런 나를 항상 '지똥이'라고 불렀다. 그래, 차라리 지똥이가 훨씬 나았다.
오빠 둘에 막내인 내가 태어나자 아빠는 은혜, 할아버지는 지은이, 엄마나 고모들도 각자 부르고 싶은 대로 내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그중에는 자야도 있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 돌잔치를 하고 나서도 출생 신고를 하지 않으시는 아빠를 대신해 엄마가 동사무소에 갔고,
"그러니까 아 아부지는 은혜라 카고 아 할아버지는 지은이라 카는데 어느 걸로 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그라마 지은이랑 은혜 합쳐서 고마 지혜하이소"
그렇게 내 이름이 지혜가 됐다는 것이다.
이게 지금 재미있을 에피소드인가? 그 이야기할 때마다 엄마는 깔깔깔 웃으며 넘어가신다.
그랬다. 내 이름은 동사무소 아저씨가 작명해 주신 이름이다.
그 뒤로 나는 이름을 바꾸리라... 바꾸리라... 바꾸고야 말리라 수없이 다짐했지만 아직까지도 그냥 지혜다.
어느 순간부터는 지혜라는 이름이 주는 무난한 평범함에 안도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친한 이들이 다정하게 불러주는 "혜야"는 나름 깊은 친밀감과 편안함도 준다.
4년 전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지혜의 사진 곳간 "사진에 글을 담다" 블로그를 시작했다. 이제 내가 나에게 이름을 줄 차례였다. 오래 고민했던것 같다.
내가 나에게 준 첫번째 이름. happy~해나!
해피 해나!
해피해 나!
'오늘 행복하게'의 행복강박증 환자다운 이름.
해나는 해가 떠오를 때의 힘찬 기운을 의미하는 우리말이다. 해가 떠오르는 걸 본 사람은 누구라도 알 것이다. 강한 끌림으로 순식간에 뭔가에 뽑히듯 쑤욱 떠오르는 그 순간을. 그런 끌림으로 사진을 찍고 그런 기운으로 글을 쓰고 그런 순간으로 매일을 살고 싶었다.
덧, 행복하게!
이번에 브런치 작가로 필명을 써넣으면서는 그 덧을 떼냈다. 이젠 그래도 되겠다 싶다. by 가 붙을테니.
by 해나,
그런데 검색해보니 해나 작가님들이 몇 보인다. 잠시 고민. 그렇다면 뭐 해야 되나? 뭐해나? 모해나? 그냥 해나?
그래,
그냥 지혜였듯 그냥 해나다.
그냥 해나가 그냥 지혜이고.
이번 참에 필명을 바꿔볼까도 싶지만 쌈배차나 킹구라가 아닌 다음에야 다 똑같지 싶다. 그 사람의 매력이 그 이름을 다시 보게 하듯, 그 사람의 글이 필명을 다시 보게 한다. 필명의 평범함이 글로 특별해질 때까지.
글 값 하는 해나! by 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