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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떡국

맛있는 한 살 먹기

by 해나

새해 첫날 떡국 한 그릇 먹는 게 뭐 유별할 일인가.

어릴 때 고향 통영에서야 맹물에 첨벙 떡 건져 넣고 끓어오르면 굴 한 줌 넣어 떠내기 전에 파나 송송 얹어 주면 끝날 일! 조연이랄 게 없는 것이 떡국이었다.

조금 노리 한 기름끼가 느끼고 싶다면 굴 대신 바지락을 참기름에 달달 볶아 끓이면 될 일. 지단이 웬 말이고 김가루는 또 웬 거들인가! 국물에 떡을 넣었으니 떡국인 것이었지.


그 후로 몇 번이나 더 먹었을까?

떡국 먹듯 나이 먹는 것이 예사롭지 않을 때쯤 전라도로 옮겨와 먹게 된 떡국은 유별했다. 나잇값 해야 할 일품요리쯤 되려나?

뭐가 그리도 정성스러울 일인지. 떡국 위의 지단은 흰색 노란색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내고 결이 열이 되어 소복이 얹어지는 고기, 깨소금과 통깨의 중첩 상태로 김과 같이 뿌려지는 고소함까지! 한 입 뜨기 전에 한눈에 이미 배가 불렀다.


장수와 재물의 복을 부른다는 새해 떡국은 그래서인지 동전처럼 어슷 썰려지고 흰 노 초의 삼색이 지갑 속 지폐처럼 섞였다.


특별히 오만 원짜리 색깔로 많이 담았다는 싱거울 농담도 꿀 떡 꿀 떡 넘어가는 떡국에 깔깔 목젖을 한번 더 치고 갈 뿐, 새해를 맞는 음식으로 더할 나위 없는 한 그릇이 되어 주었다.


대구로 옮겨와 사는 동안에도 매해 첫날에는 떡국을 끓였다. 몇 년 전부터는 한 그릇 끓이자고 굳이... 하며 넘길 만도 했지만 새해 첫 끼 떡국이 주는 그 오롯함의 맛이란 또 한 해 잘 먹고 잘 살아보자는 나와의 이야기라 넘길 수 없는 의식처럼 자리 잡았다.



작년엔 통영에서 올라온 아빠의 텃밭 배추와 굴로 떡국을, 올해는 해장 떡국을 찾아 먼 길 와 준 막내를 위해 양지를 넣어 끓였다.


그렇다고 모녀가 마주 앉아 새해 떡국을 먹는 일반적인 다정함이란 물론 없다. 각자의 삶에 무심코라도 툭 하니 발을 들여놓지 않듯이 떡국도 각자의 시간에 각자의 숟가락만을 들이밀 뿐. 우리가 떡국을 먹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식이다.



그랬다.

2025년 새해 첫날에도 어김없이 떡국을 먹었다. 나이만큼 떡을 헤아려 먹기에는 여러 번 나눠야 할 만큼 많아졌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


한 그릇 또 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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