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을 기록하는 시시각각 저장소
올해 첫눈이 왔다.
소복이 쌓여 눈사람을 만들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와~~ 눈이다!" 소리쳐도 될 만큼, 사뿐사뿐 밟아 뒤를 돌아보면 발자국이 콕콕 찍힐 만큼은 왔다.
나는 눈이 그리 좋다.
왜랄게 없이 그저 좋다. 퇴근길 걱정은 어른들의 몫. 이럴 때 나는 마냥 아이다.
이 시간을 놓칠세라 사진을 찍고 또 영상을 찍어 나의 사진 창고인 블로그에 먼저 올린다. 긴 글이 필요 없다.사진으로 이야기하는 공간이기에.
그날 나의 일상으로 날아온 눈을, 퇴근길의 그 스쳐가던 겨울 풍경을, 사진으로 소통하고 영상으로 나눈다.
"사진에 글을 담다" 라는 블로그 이름처럼,
나의 설렘 기쁨 그리고 가끔의 슬픔이나 아픔도 사진이란 겉옷을 걸친채 아우터의 감정을 흘깃 보여주기에 한결 마음이 가볍다.
마치 잠옷 위에 롱패딩을 입은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그것이 대충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아우터로 아우트라인을 잡는 곳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반대로, 안에 어떤 옷을 입었는지 겹겹이 껴입은 옷을 열어 나열하는 곳은 브런치다.
브런치에서는 사진에 글이라는 옷을 입힌다. 아우터 속에 차곡차곡 껴입은 옷들을 하나씩 하나씩 벗으며 때론 눈에 눈물이 어리기도 하고, 내린 눈이 눈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지난 4년간 써 온 블로그, 그 데일리 아우터가 후줄근해질 무렵 마침 브런치라는 공간이 생긴 것이 참 좋다.
그저 "와~ 눈이다"로 끝날 이야기가 여기서는 추억을 입고, 시간을 입고, 하나하나 포개져 더 세밀한 감정들의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나의 첫눈.
내 고향은 통영이다.
내가 통영에 살면서 눈을 본 기억은 두어 번이 전부다. 통영에 발목까지 푹푹 빠질 만큼 눈이 오던 날, 버스도 택시도 모든 차들이 그대로 서버렸다. 학교도 오지 말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런데 걸어서 학교를 갔다.
공중전화가 보일 때마다 들어가서 수첩을 꺼내 들고 "눈이 와! 눈이 온다고!"를 외치며 통영을 걸어 한 바퀴 돌았다. 아침에 나선 걸음은 해질 때까지 계속 됐고,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추운 줄도 몰랐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은 달랐다. 해는 지고 뽀얗던 눈이 짓이겨진 길을 걸어오는 밤은 춥고 무섭고 힘들었다. 첨벙첨벙 부츠 안으로 새어드는 차가움은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움찔움찔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그때 저만치서 비쳐오던 손전등 불빛.
"지혜가? 어? 지혜 맞나?"
전등빛이 빠르게 춤을 추며 달려온다. 아빠였다.
"어이구~" 한마디에 담요를 두르신다.
"여자 아가"두 마디에 신발을 갈아 신기 신다.
"쯧쯧~" 세 마디에 모자를 벗어 씌우신다.
나는 그저 서있었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등을 보이신다.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 등에 업힐 의향이 전혀 없는 딸의 날숨을 느끼고서야 한참 낮추셨던 몸을 일으키시며 "가자" 하신다.
내가 태어나 처음 경험한, 내 심장이 처음으로 요동쳤던, 내 마음이 표류하는 배처럼 동요했던 첫눈이었다. 사진 한 장 남길 수 없었던 아주 오랜 이야기지만,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선명하다.
대구에 눈이 왔다. 새해 첫눈이다. 나는 그 눈 위에 내 이름을 적어보고, 내가 좋아하는 이들이 있는 모임의 이름을 적어보고, 이렇게 웃는다.
행복하다.
나의 첫눈이 나의 일생에서 마주하는 모든 눈을 웃게 한다.
눈(雪) 앞에서 그리고 내 눈(眼) 앞에서, 그랬지 하며 지나가는 시간을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이 행복하다.
아우터를 걸쳐 입듯 블로그를 쓰고,
내밀한 탑을 열어보이며 브런치를 쓰고,
또 그것을 내 친밀한 이들과 나누려 밴드에 옮기는 일.
번거롭지 않다.
각각의 자리에서 시시각각의 사람들과 마주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