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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예찬

09.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아담한 호수_ 사라오름

by Happy LIm

[ 사라오름의 겨울(02.06) ]


제주도에 있는 368개 오름 중 분화구에 항상 물이 고여있는 오름은 사라오름, 물장오리, 물영아리오름, 물찻오름, 금오름 등 5개가 있다. 이중 호수 규모가 가장 큰 것은 사라오름이다.


'사라'라는 이름은 신성한 산이나 지역 혹은 불교적 의미에서 '깨달음'과 '알고 있다'는 뜻을 가진다고 한다. 사라오름은 해발 1,338m에 위치해 있으며, 둘레는 2,481m, 면적은 441,000㎡에 달한다. 호수 깊이는 1.5m 정도이다. 또한, 사라오름 분화구는 제주도 6대 명당자리 중 제1 명당자리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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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오름은 성판악코스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백록담을 다녀온 후 잠깐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백록담을 다녀오다 보면 몸은 지칠 대로 지친 데다가 다시 편도 500m 이상을 올라가야 번거로움 때문에 그냥 지나쳐 버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한번 이곳을 찾았던 사람은 힘들더라도 다시 방문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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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을 다녀온 후 사라오름 입구까지 내려오는 길에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힘들어 죽겠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벌써 백록담을 보고 내려오시는 거예요?', '백록담에는 물이 차 있나요?', '얼마나 더 가야 정상이 나오나요?' 등을 묻는다.


사라오름에 도착하니, 분화구 내부의 물은 얼어있고, 그 위에 흰 눈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건너편 전망대로 가서 한라산 정상을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에 흰 눈이 쌓인 백록담이 있고, 그 백록담 주위로 흰 구름이 길게 걸쳐 있다. 마치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떼를 지어 목표물을 향해 전진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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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바라보는 백록담과 그 주위는 모두 하얗다. 사라오름과 백록담 사이에는 주목 등 나뭇가지에 옅게 눈이 쌓여 있는 풍경이다. 이곳에서 보는 서귀포 앞바다 풍경도 볼만하다. 서귀포 앞바다 위에는 하얀 구름이 떠 있어 마치 서귀포가 위와 아래 모두 하얀 세상에 휩싸여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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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오름의 여름(08.07.) ]


사라오름은 2019년과 올해 2월 한라산 등반 때 방문했던 곳이다. 해발 1,338m의 높은 곳에 위치한 이곳에는 둘레 250m의 분화구 호수가 있으며, 맑은 물이 가득 차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생전 처음으로 높은 한라산을 오른 후 힘들어하는 아들에게도 이곳을 보여주고 싶어 여러 번 가보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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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이나 직장생활로 바빠서 언제 다시 한라산 정상을 오를 수 있겠니?’, ‘이렇게 맑은 날에 사라오름에서 호수뿐만 아니라 한라산 정상과 서귀포 시내를 조망하는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것이야?’라며 설득한 끝에 아들과 함께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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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오름 입구에서 분화구까지의 고도 차이는 150m이다. 제주오름 368개 중 25번째로 높은 오름으로, 정상까지는 나무계단이 잘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급경사이므로 한라산을 등반하고 나서 오르기에는 다소 힘든 코스다. 아들도 올라가는 내내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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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한 걸음 한 걸음 올라 분화구 내 호수에 도착했다. 비가 온 뒤라 분화구 내에 물이 고여 있었다. 소낙비가 내린 뒤에는 호수 주위의 나무 데크까지 물이 차오르는데 이번에는 그 절반 정도 차 있었다. 그래도 넓은 분화구 내에 맑은 물이 고여 있어 분화구 능선이 호수 내에 비쳤다.


가끔 새들이 물 위를 스치듯 날아다녔다. 분화구 호숫가에 설치된 나무 데크를 따라 입구 반대편으로 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호수를 바라보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며 경치 또한 멋지다. 이곳에서 100m 정도 올라가면 전망대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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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는 오른쪽으로 한라산 정상이 보인다. 그리고 정면으로는 서귀포 시내와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귀포 방면에서 한라산 정상 방면으로 흐르는 먹구름이 한라산 정상을 가리고 있었다. 맑은 날 이곳에서 바라보는 정상의 모습이 멋있는데 아쉬웠다. 그래도 가끔 구름 사이로 한라산 정상이 언뜻언뜻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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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힘겹게 찾아온 이곳이 '한 번쯤은 올 만한 곳이지?'라고 물었을 때, 긍정적으로 대답해 안심이 됐다. 서귀포 시내를 바라보며 전망대의 나무 데크에 지친 몸을 기댔다. 약 10분간의 휴식 후, 한라산 정상을 선명하게 볼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을 품고서 오름을 내려왔다.




[ 사라오름의 가을(10.03.) ]


백록담을 다녀온 뒤, 조심스레 사라오름 방향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경사진 길을 다시 올라가려 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올라가는 길에서 한라산 지킴이들을 만났다. 종량제 봉투를 손에 들고 등산로 주변의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 덕분에 한라산 등산로가 깨끗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마웠다. 산책로에서는 가볍게 차려입은 외국인도 보였다. 대부분의 외국인은 등산복과 등산화 대신 평소에 입는 청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한라산을 오른다.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니, 마침내 사라오름 호수가 보인다. 사라오름 호수는 맑은 물로 가득 차 있어, 밑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분화구를 둘러싼 오름 능선의 나무들이 호수에 비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높은 곳에 이런 호수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 멋진 경치에 다시 한번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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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오름 왼쪽 호숫가에는 반대편 전망대 입구까지 나무 데크가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다. 이 데크를 걸으며 호수와 한라산 정상을 바라보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호수 내부를 바라보면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이 은빛으로 반짝이며, 호수 속 초록빛 식물과 오름 바닥의 검은 현무암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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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오름을 지나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에서 30대로 보이는 여성이 넘어져 이마와 무릎에서 피가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도 한라산 지킴이 중 한 명인 것 같다. 그녀는 먼저 천천히 하산하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전망대에는 한라산 지킴이로 참여한 10여 명의 사람들이 식사하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귀포 바다에는 아직도 옅은 안개가 끼어 있었지만, 한라산 정상은 맑았다. 사람이 많아 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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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과 사라오름 모두를 다녀오니, 한라산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속밭 휴게소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하산 길은 오늘따라 어렵지 않았다. 발걸음도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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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오름의 겨울(11.13.) ]


하산 길에 사라오름을 찾았다. 일부 등산객은 한라산 백록담보다 사라오름만을 보기 위해 특별히 오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도 내 앞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친구로 보이는 중년 여성 네 명이 함께 왔는데, 아이젠이나 등산 스틱 없이 등산로 양 옆에 설치된 줄을 잡고 올라가고 있었다. 사라오름 입구에 도착하니, 평소에 맑은 물로 가득 찬 분화구가 온통 하얗다. 분화구 내부의 물이 얼어 분화구 위에 눈이 쌓여 마치 드넓은 운동장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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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안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어 정말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이곳은 한라산 정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하다. 오름 전망대에서 사진을 몇 컷 찍은 후 반대편 또 다른 전망대로 향했다. 한 젊은 여성이 오름을 배경으로 20~30분 동안 사진 촬영에 열중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마 개인 유튜버인 것 같다. 제주도 유명 관광지에서는 종종 보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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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한라산 정상을 바라보니 백록담을 중간에 두고 한쪽은 구름이 몰려들고 반대쪽은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 한라산이 높아 구름도 쉬어가는 듯하다. 일부 등산객은 이곳에서 음식을 즐기고, 다른 일부는 한라산 정상과 서귀포 방향의 경치를 감상하며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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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분 휴식 후 전망대에서 내려오데 여성 한분이 아직도 사진 촬영에 몰두하고 있었다. 셀카 봉을 여기저기 옮겨가며 사진을 찍고, 직접 핸드폰을 들고 셀카를 찍는다. 현장을 직접 찾아가 유튜브로 생중계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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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전망대로 돌아오니, 중년 여성 네 명이 아직도 이곳에 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함께 찍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한 분이 나에게 커피 한 잔을 권하길래, 고맙게 받아들였다. 커피를 마시며 '고맙습니다, 커피가 정말 맛있네요!'라고 인사를 나눴다. 단체 사진을 찍어드리겠다고 제안했을 때, 그들은 기쁘게 수락했다. 사진을 몇 컷 찍어주니, 귤까지 주셨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대체로 마음이 따뜻한 것 같다. 가지고 온 음식을 서슴없이 나누어 주는 모습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음식물을 주고받는 일이 줄어들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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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오름을 내려온 후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이제 하산하는 사람들도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새벽 6시에 등반을 시작해 눈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한 후, 10시 15분경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사라오름에서도 30분 이상을 보내니, 하산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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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았으면 하산하는 길이 지루함으로 가득 찼을 텐데, 오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라산 정상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풍경과 사라오름까지의 여정에 만족감이 넘쳐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등산 목적이 반드시 정상을 밟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 풍경도 보고, 명상도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마음으로 걸었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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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 한라산 등산로를 따라 이어진 숲길과, 길가에 펼쳐진 노란색과 빨간색 단풍이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산책로 양쪽에 자리한 조릿대도 보기 좋았다. 성판악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13시 25분이었다. 오늘 총 7시간 25분 동안 등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 소낙비 속 사라오름, 한라산의 또 다른 매력(12.16.) ]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순간, 오늘 하루는 숙소에서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숙소에만 머물면 게으름에 빠질 것 같아 외출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비 오는 날, 사라오름에 물이 가득 찬 호수가 생각났다. 그래서 서둘러 한라산 탐방 예약 사이트에 접속해 예약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다행히 10시부터 12시 사이에 예약할 수 있었다. 등산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배낭에 담아 바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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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판악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주차장에 한두 자리가 비어 있었다. 비옷과 무릎 보호대를 챙겨 착용한 후, 10시 30분경에 출발했다. 출발할 때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어 비옷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걷기 시작한 지 500m도 채 되지 않아 비가 갑자기 굵어졌다. 바로 비옷을 입고, 굵은 빗줄기를 맞으며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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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판악 코스로 백록담을 등반하려면 대부분 오전 6시에서 8시 사이에 입산한다. 늦어도 8시에서 9시 사이에는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는 사라오름을 목표로 10시 30분에 출발했기 때문에, 이 시간대에는 등산로가 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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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쯤 걷다 보니, 굵은 빗줄기가 갑자기 거센 소낙비로 바뀌었다. 소낙비가 비옷 위로 쿵쿵 떨어졌다. 등산로는 빗물이 흘러내리고, 평소 마르기만 하던 계곡에도 빗물이 졸졸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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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낙비 소리가 한라산 등산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첫 번째로 비가 나무 가지를 때리는 듯한 ‘사사삭 사사삭’ 거림의 소리가 들리고, 이어 내게 떨어지는 ‘뚜두둑 뚜두둑’하는 소리가 이어진다. 젊었을 때는 비가 내리면 불편하게만 느껴졌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그 소리가 정겹게 다가온다.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으며 나아가다 보니 속밭 휴게소에 도착한다. 비옷을 준비하지 못한 등산객들이 비를 피하고 있고, 일부는 소낙비가 가늘어질 것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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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밭 휴게소를 지나 사라오름에 도착하니, 호수가 예상보다 메말라 있다. 평소에는 비나 눈이 내리지 않아 건조하지만, 오늘 내린 비로 조금이나마 물이 차 있었다. 분화구가 가득 찰 때는 마치 큰 호수처럼 보이지만, 건조할 때는 바닥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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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분화구는 절반 정도 물이 차 있어, 반은 맑은 물이고 나머지 반은 현무암 색의 흙과 자갈이다.


구름이 많아 백록담 등의 주변 경치를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반대편 전망대에 올라보니 구름 때문에 서귀포 시내나 백록담을 볼 수 없고, 바람도 거세게 불어온다. 이곳에는 나 혼자뿐이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 몇몇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사라오름과 백록담으로 가는 갈림길에서부터는 구름이 걷히며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그러나 속밭 휴게소에 이르러 다시 구름이 몰려온다. 구름이 숲으로 스며들면서 나무 사이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소낙비를 맞으며 사라오름을 찾은 오늘은 정말 좋았다. 사라오름만 탐방해도 전혀 서운함이나 아쉬움은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한라산 탐방은 시간 단위로 예약을 하지만 예약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면 입장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9시쯤 도착했어도 백록담까지 다녀올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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