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색다른 한라산을 만나다_ 석굴암코스
석굴암은 한라산 북사면의 족은두레왓 아래 금봉계곡에 있는 태고종 사찰이다. 1947년 월암당 스님이 세웠으며, 제주 4.3 사건 당시 법당이 전소되었으나 1950년대 후반 신도들이 복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석굴암이 한라산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한라산 중산 간 자락에 위치해 있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도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석굴암코스 입구를 찾기가 어렵다. 제주 시내에서 1100도로를 따라 서귀포 중문방향으로 가다 보면, 좌측에 '천왕사'라고 쓰인 푯말이 나온다. 주위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이 길을 따라 300~400m 정도 들어가면 2020년에 개소한 제주 국립호국원과 천왕사 사이에 자그마한 소나무 숲길이 나온다. 간혹 이 길도 지나쳐서 천왕사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곤 이곳저곳 헤매기도 한다.
등산로 입구는 소나무가 우거진 평탄한 오솔길이다. 그래서 일부 등산객은 국립호국원 안에 조성된 산책길로 생각하곤 한다. 입구에서 사찰까지는 편도 1.5km이고, 왕복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산책로 입구에서 200~300m 올라가면 그 이후부터는 경사진 길이 이어진다. 등산로 대부분이 나무 계단으로 조성되어 있고, 두 사람이 다닐 정도로 넓은 길이다. 2021년에 등산로 전체를 정비하여 깔끔하다.
어느 정도 올라가다 보면 등산로 양쪽으로 깊은 계곡이 나온다. 일부 구간은 낭떠러지이다. 그래서 등산로가 완만한 경사임에도 고바위를 지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좁은 산책로에서 양쪽 절벽을 마주하면 때론 다리가 떨리기도 한다. 고소공포증이라도 있다면 무서워 발을 떼지 못할 수도 있다.
한걸음 한걸음 오르다 보면 하나의 능선을 지나고, 또 다른 능선이 나온다. 어느 지점부터는 마치 한라산 백록담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험준하고, 왕복 2~3시간 소요되므로 '한라산 7개 코스 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젠 다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잠시 쉬어갈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숨을 돌리고, 물 한 모금도 마신다. 그리고 난 다음 200~300m 올라가면 아득히 먼 계곡 바닥에 자그마한 사찰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급경사진 내리막 길이다. 암자로 내려가는 산책로 옆에는 촛대 모양의 큰 바위 두 개가 있다. 깊은 산속 암자 입구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영험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커다란 바위가 어떻게 이곳까지 와서 자리 잡고 있을까. 한편으론 궁금해진다. 두껍게 덮였던 흙이 오랜 시간 풍화작용에 의해 드러났을 수도 있다. 어쩌면 폭설이나 폭우로 인해 고산지대에서 굴러 내려왔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암자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느껴지는 바위임에 틀림없다.
급경사인 산책로를 따라 계곡으로 200~300m 내려가면 사찰이 있다.
이 사찰은 여느 사찰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언뜻 보면 깊은 산골에 농작물을 보관하기 위해 허름하게 지어 놓은 창고와 같아서 ‘제대로 찾아왔나!’라는 착각을 준다.
사찰 외관은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가정집과 유사하다. 사찰 안은 커다란 암벽에 뚫린 천연동굴을 본당 삼고, 스님이 거주하는 방과 부엌, 창고로 구성되어 있다.
사찰 안에 들어서면 입구가 아주 좁다. 입구에 부엌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쌀, 생수 등이 가득 쟁여져 있다. 오른쪽은 스님이 거주하는 방으로 장작불로 난방을 하는 듯 보인다. 스님 한 분이 안방에 앉아 계신다. 신발을 벗고 본당에 들어서면 깊숙한 동굴에 들어왔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곳 천연동굴로 만들어진 본당에는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이곳 사찰은 제주도에서는 기도를 잘 들어주는 영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수험생을 둔 부모들이 이곳 머나먼 곳까지 찾아와 기도를 드리곤 한단다.
오늘도 사찰 입구에는 각종 시험 합격을 위한 100일 기도가 가능하다는 안내문도 붙어 있다.
석굴암에서 내려오는 길에 기도를 드리러 오는 듯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인다. 머리가 하얀 할머님도 계시고, 고3 자녀를 둔 듯한 중년의 아주머님도 보인다. 연인인 듯한 젊은 남녀가 손을 꼭 잡고 올라오는 모습도 보인다. 모두가 평온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