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구좌읍 행원환해장성
장소 :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행원환해장성
날짜 : 08월 29일
칠흑 같은 바다를 가르며 붉은 태양이 솟구친다.
핏빛 열기를 머금은 태양이 하늘을 뒤흔들자, 주변의 거친 파도와 바람마저 고개를 숙인다.
자신의 힘에 도취된 태양은 오늘만큼은 반드시 저 바닷가를 지키는 거대 방벽, 환해장성을 넘어서리라 결심한다. 바로 실행에 옮긴 태양은 바다 위에 비스듬히 놓인 작은 암벽 하나를 가볍게 불태우듯 넘어선다.
“하하하! 아무것도 아니잖아. 생각보다 너무 쉬운데?”
승리감에 도취된 태양은 더욱 무서운 기세로 바다 위를 질주하듯 떠오른다.
태양이 수평선을 박차고 오르자, 폭발하듯 쏟아져 나온 빛이 바다 위에 황금빛 전차의 길을 만든다.
길은 점점 넓어지고, 전투의 서막을 알리는 듯 긴장감이 고조된다.
“내 앞을 막을 자 누구냐!”
태양이 전장을 울리는 듯한 우렁찬 외침을 던진다.
그러나 그의 접근을 감지한 듯, 그동안 수면 아래 숨어 있던 환해장성의 실루엣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해수면을 밀어 올리며, 차갑고 단단한 벽들이 연속적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태양빛이 바닷가에 가까이 다다를 즈음 환해장성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끝없이 이어지는 벽,
강철보다 강하고, 바다보다 깊은 방어선,
금방이라도 넘을 것 같던 장벽은 어느새 거대한 철옹성으로 변해 있다.
태양은 뜨거운 열기를 분출하며 벽 가까이 까지 다가선다.
그러나 그 뒤에는 또 다른 벽들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다.
전부를 넘어 서기엔 태양도 지쳐갔다. 잠시 맹공을 멈춘 태양은 깨닫는다.
이 싸움은 누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가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춤과 같다는 것을.
태양은 뜨거운 숨을 고르며 환해장성에게 말한다.
“네가 나를 막아섰기에 나는 더 찬란해진다.”
환해장성도 잔잔한 파도결을 보내며 응답한다.
“네가 있기에 나는 끝없이 빛을 되돌려 보낼 수 있다.”
그리하여 둘은 더 이상 적이 아닌, 태양은 환해장성의 선봉장이 되고
환해장성은 태양의 빛을 받쳐주는 거대한 무대가 된다.
붉은 태양과 푸른 장성은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며, 하늘과 바다 위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 시작한다.
그렇게 두 존재는 전투가 아닌 화합의 장관을 펼쳐내며 멋진 제주의 하루를 완성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