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읍 조천리 관곶
장소 :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조함해안로 217-1
제주 해안의 바람이 가장 먼저 닿는 곳, 그 바닷가에 갯강활이 자란다. 파도에 씻기고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풀. 마치 언젠가는 이 섬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겠노라, 말없이 꿈을 키우는 존재처럼 보였다.
어릴 적 제주의 작은 꼬마는 서울을 꿈꾸기보다 두려워했다. 섬 밖의 세상은 너무 넓고, 그는 너무 작아 보였다. 가족과 친구를 떠나 낯선 곳에서 홀로 살아간다는 상상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시큰해지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성년의 나이가 되었을 즈음, 이곳저곳에서 이야기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옆 마을 누구누구가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갔다는 소식, 그곳에서 꿈을 찾고, 자리를 잡았다는 이야기, 그 말들은 바람처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두려움은 서서히 자리를 비웠고, 그 자리에 도전이라는 이름의 용기가 뿌리를 내렸다.
서울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잠들기 아까운 밤들과,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공부하고, 일을 했고, 직장을 얻고 가정도 이루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나이는 등을 떠밀듯 삶의 속도를 늦추라 말하고 있었다.
문득 고향이 떠올랐다. 젊을 때는 돌아볼 겨를조차 없던 제주가 이제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이 섬으로 돌아왔다. 어릴 적 뛰놀던 바닷가, 갯강활이 자라던 그 자리 근처에 앉아 조용히 바다를 바라본다.
이 섬을 떠나겠다고 다짐하던 어린 날의 꼬마가 파도 소리 사이로 고개를 든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딛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이 지금의 그를 여기까지 데려왔음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한다.
갯강활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떠나지 않은 채, 떠남을 품고 자라온 풀처럼. 그리고 그 꼬마는 커다랗게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이 바다 앞에 서 있다. 떠났기에 알게 된 고향의 의미를, 이제는 말없이 가슴에 새기며 파도와 함께 오래도록 앉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