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싱가포르에서 일하고 있는 전 직장 동료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이건 뭔가 있다.’
그분은 약 7년 전, 내가 잠시 싱가포르에서 주재원으로 일할 때 함께했던 동료였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던 시점에 그는 미국 본사의 싱가포르 지사로 이직했고, 그 이후로는 소식이 뜸했었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싱가포르에서 일해볼 생각 있어?”
사실 나도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언젠가 다시 이곳에서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관심이 있다고 대답했고, 그로부터 약 한 시간 뒤, 그의 보스(지금의 내 보스)와 15분간 전화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말은 15분이었지만, 체감 시간은 150분이었다.
그렇게 모든 일이 단 1시간 30분 안에 벌어졌다.
갑작스러운 전화, 예상 못 한 인터뷰, 그리고 전화를 끊고 나서야 아내에게 설명한 상황.
그로부터 8개월 뒤, 나는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인생은 정말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처음 제안을 받은 후 약 6개월 동안 세 차례의 인터뷰를 거쳤고, 연봉 협상부터 비자 발급까지 다양한 절차를 밟았다. 그 와중에도 회사 업무는 계속 이어졌고, 영어 공부까지 병행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모든 절차가 끝난 후, 짐을 싸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어떻게 싱가포르로 취업할 수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아래 세 가지 요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이전 회사는 반도체 업체를 대상으로 생산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나는 주로 시스템 구축 업무를 담당했고, 지금 다니는 싱가포르 회사 역시 내가 참여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이 시스템은 한 번 도입하면 다른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입 장벽이 높은 구조다. 그래서 회사 입장에서는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익힐 새로운 인재를 뽑기보다는, 이미 시스템을 잘 아는 나를 채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꼭 대기업에 다니지 않더라도 좋은 프로젝트를 경험한다면 충분히 기회는 생긴다는 것을 실감했다. 실제로 이전 회사에서도 대기업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커리어 점프를 한 동료들이 꽤 많았다.
현재 내 보스와의 인연은 7년 전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당시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발표 준비도 열심히 하고, 불편한 자리에라도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었다. 4년쯤 뒤, 또 다른 프로젝트로 다시 만나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이 이번 기회의 발판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무언가를 계획해서 네트워킹을 했던 건 아니다. 단지 기회가 왔을 때 최선을 다해 좋은 인상을 주려고 했을 뿐이다. 지금 싱가포르에 와서 일하며 새삼 느낀다. 네트워킹은 결국,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얼마나 꾸준히 성실하게 행동해왔는가’의 결과라는 것을.
솔직히 말하자면, 내 영어 실력은 부족한 편이다. 대학원 시절 해외 학회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지만, 질의응답 시간은 늘 공포였다. 발표는 준비로 커버가 가능했지만, 예상치 못한 질문에는 멍해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억지로라도 영어를 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 덕분에 아주 조금씩이라도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유창하진 않지만, 내가 아는 시스템에 한해서는 더듬거리더라도 설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그 정도면 일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물론 영어를 잘하면 좋다. 하지만 ‘완벽해야만 해외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가진 전문성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였다. 어쩌면 나의 싱가포르 취업은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운이 기회로 바뀐 데에는, 내가 그동안 해온 일들과 작은 노력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앞으로도 어떤 기회가 찾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기회를 기꺼이 잡을 수 있도록 나는 계속 준비되어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