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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얽매이지 않기

by 행복한 시지프

많은 이들이 진로를 택할 때, 과거에 얽매인다고 느낀다. 과거를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것과 얽매이는 것은 한 끗 차이이다. 얽매인다는 것은, 놓아야 할 것을 놓지 못하거나, 계속 그것에 집착하여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경제학과 학생이라고 하여, 진로를 경제학 분야로만 정해야 할까? 나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19살의 결정을 얼마나 인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보인다. 나는 19살의 나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상경 계열로 진학한 이유는, 고작 하고 싶은 것이 없고 문과 중에 취업이 잘 되는 학과라는 이유뿐이다. 수능을 사회탐구에서 경제를 공부해 보지도 않았다. 그런 19살의 선택을 존중할 이유가 하등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얽매이는 데는 2가지 두려움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첫 번째는 매몰 비용이 아까워서, 두 번째는 뒤처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매몰 비용은 경제학적으로 비합리적인 선택임이 많이 알려져 있다. 인간이 매몰 비용을 고려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본능이지만, 이를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뒤처지는 것 또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2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뒤처진다는 것의 개념은 남과의 비교에서 오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경쟁을 상정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 개념이다. 자기 삶을 설계하는데 타인과의 경쟁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가? 당연히 취업, 승진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경쟁을 아예 무시해도 된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최소한 나의 삶 평생을 책임질 중요한 결정을 하는 순간에는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뒤처지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실제로 따라잡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교 4학년을 마친 임의의 경제학과 학우 A를 떠올려보자. 25살이고 경제학을 하나도 모르는 또 다른 기계공학과 학우 B를 떠올려보자. B 학우가 A 학우만큼의 경제학 지식을 얻는 데 얼만큼이 걸린다고 생각하는가? 학부 수준의 지식을 압축해서 얻는 데 얼만큼이 걸린다고 생각하는가? 24개의 경제학 수업(72학점)을 들었다고 해도, 수업 시간을 계산하면 16주차 * 3시간 * 24개 과목 = 1,152시간이다. 수업을 들은 만큼 공부한 성실한 학우라고 가정하고, 총 2,304시간을 공부하는 데 썼다고 하자. 하루에 10시간 공부하면, 230일 만에, 하루에 5시간 공부해도 460일 만에 그 지식을 달성할 수 있다. 다른 모든 것을 고려해도, 나는 기껏해야 2년 안에 학부 수준의 지식을 충분히 넘고, 직업을 얻을 만큼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2번의 직무 전환이 있었다. 25살에 경제학에서 소프트웨어 개발로 직무 전환을 하였다. 나는 대학교에 들어와서 경제학을 열심히 공부한 편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아깝지 않냐는 반응도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1년 안에 취업이 가능할 텐데 하면서 말이다. 나는 당연히 아깝지 않았다. 취업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그저 철저히 내가 되기 위해서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2년이 되지 않아, 토스(Toss) 회사에 입사하여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게 되었다. 한 1년 만에 학부 3학년 수준의 실력을 갖추게 된 것 같고, 나머지 1년은 취업을 경쟁력 있게 할 정도의 역량을 갖추는 시간이었다.


28살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교육으로 직무 전환을 하였다. 이번에도 소프트웨어 개발로 유명한 토스를 나와서, 교육으로 가는 게 아깝지 않냐는 반응이 많았다. 전혀 아깝지 않다. 원치 않은 일을 하는 시간이 더 아까울 뿐이다.


나는 이러한 도전이 결국엔 이득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즉, 도전해서 성공하면 당연히 이득이고, 실패해도 이득이라는 관점이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도전해 보고 실패하는 게 왜 이득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경제학에서 소프트웨어 개발로 전향을 시도하다가 1년 만에 다시 경제학으로 돌아온, 평행 세계의 나를 상정해 보자. 나는 경제학 학부생이며, 소프트웨어 공학 3학년 수준의 지식을 1년 만에 얻게 된 것이다. 그러면 나는 경제학도 잘하고, 소프트웨어 공학도 잘하므로, 경제 현상을 실증분석 하기 위해서, R, Python, MATHLAB, Excel 등을 누구보다 잘 활용했을 것이다. 그런 것을 활용하여 계량 경제 분야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학문이 연결되는 것이 상당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타이탄의 도구들이라는 책에서 나오는데, 상위 1%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1%만큼의 재능과 노력을 하고 한 분야를 탐구해서, 1%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상위 20%로 잘하는 여러 분야를 합쳐서, 결국 1%가 되는 것이다. 경제학을 20%로 잘하고, 프로그래밍을 20%로 잘하고, 통계분석을 20%로 잘 해낼 수 있다면, 계량 경제 분야에서 1%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이유를 여러 관점에서 설명했다.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하여,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생각해 보자. 나는 어떤 전공도 아니며, 어떤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어떤 나이도 아니라고 생각하자. 이렇게 나의 현재에서 초월할 수 있다면, 진정 나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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