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를 탐구할 때 가져야 할 세 번째 자세는 바로 평생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나에 대해 탐구할 때, 평생 가는 진리, 정답을 찾으려고 할 수 있다. 나이도 어리고, 불안하고, 가진 것도 없는 상태에서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레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게 된다. 자아를 탐구하는 과정이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이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세를 경계해야 한다. 절대적 진리는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확장되고, 세상이 변화함에 따라, 나의 가치는 조금씩 변해갈 수 있다. 좋다고 생각했던 것을 가까이서 보니, 좋지 않을 수 있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또는 전혀 모르던 것을 경험하며, 나 자신을 새로 발견해 낼 수 있다. 또는 세상이 변화하면서, 기존에 없던 가치가 생겨날 수 있다. 산업 혁명으로, 지식 산업이 엄청나게 발전해 왔던 것처럼, AI 혁명으로 누구나 어떤 것이든 만들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상황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자신의 가치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나 또한 25살에 나에 대한 절대적 진리를 발견하려고 했다. 열심히 찾아낸 결과, 창조, 선한 영향력, 이 두 가지를 평생 가지고 갈 가치라고 생각했다. 그때 너무나 기뻤다. 내 삶은 이 두 가지를 충족하는 것을 수행하며 살아내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가치들을 수행하며 살아가다 보니, 석연치 않은 감정들이 올라왔다. 28살에 다시금 고민해 보니, 창조라는 가치는 절대 버리지 못할 만큼 중요한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렇게 버리기 어려웠다. 또다시 무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불안감, 관성, 주변에 떠벌려 놓은 것들이 두려웠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식과 경험이 확장됨에 따라서 당연히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창조라는 키워드를 버릴 수 있었고, 현재는 교육자로 살아가며, 선한 영향력과 관계에 포커스를 맞추어 살아보고 있다.
이것 또한 평생 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육을 해보고 싫증이 날 수도 있으며, 다른 일을 해보았더니, 더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제는 이러한 유연함, 변화의 가능성을 수용하고 있다. 절대적인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수용 또한 절대 쉽지 않은 것임을 안다. 내가 이를 수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3가지에 기반하고 있다. 첫 번째는 역량에 대한 자신감이다. 내가 직업을 바꾼다고 했을 때, 2년 안에 해낼 수 있음을 안다. (이전,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 절에서 설명했다.) 경험적으로도, 연역적으로도 타당함을 증명해 보았다. 두 번째는 변화무쌍한 경험에 대한 즐거움이다. 변화라는 것은 본디 불안감과 즐거움을 동반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불안감도 없겠지만, 즐거움도 없다. 변화한다면 불안하겠지만 즐겁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롭게 나를 알아가는 것이 엄청나게 즐거운 일임을 나는 깨달았다. 세 번째는 Connecting the dots에 대한 신뢰이다. 언젠가 dot(경험)이 연결되어, 더 큰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내가 경제학을 전공한 일이 절대 무용하지 않으며, 내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게 절대 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내가 멘토링을 다수 진행했던 경험이 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과거에 교육 경험, 프로그래밍 경험이 합쳐져 소프트웨어 교육자가 될 수 있었다.
이 3가지는 내가, 변화를 수용할 수 있고, 나의 심장을 따르도록 해준다. 이젠 나의 10년 후 미래를 확정하여 정의하지 않는다. 10년 후에 무엇이 되어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두렵지 않고, 엄청나게 즐겁다. 대체 무엇이 되어있을까 기대가 된다. 또 어떤 것을 배워나갈까 기대가 된다. 내 안에 무엇이 더 있을지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