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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산책 Dec 26. 2023

엄마랑 외삼촌은 왜 성이 달라?

어릴 적엔 정말 몰랐다.

어렸을 때는 정말 몰랐다. 초등학교 되기 전인가, 그 시절 후뢰시맨 바이오맨 이런 비디오가 유행일 무렵이었다. 설날즈음으로 기억이 되는데 명절을 맞아 온 가족이 서울로, 외할머니댁에 간 적이 있었다.

난생처음 본 외삼촌, 이모들! 외삼촌과 함께 비디오를 빌리러 갔다. 한참 TV에서 후뢰시맨, 바이오맨 이런 것이 나올 때였기에 우리의 관심은 후뢰시맨이었던 거 같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지구방위대 후뢰시맨 오총사 " 하면서 무지갯빛 대포 같은 것이 돌아가면서 변신하는 영웅들의 이야기.

그걸 보면서 외삼촌에게 물어봤다. 


"외삼촌 이름은 뭐야? 000 어? 근데 왜 우리 엄마랑 성이 달라?"

"아, 그건 교회 가면 다른 이름을 주는데 그 이름이라서 그래."라고 말했었다.

그때는 정말 그런 줄 알았었다. 교회를 다녀보지 않았던 그 어린 마음으로서는 그 말이 진짜인 줄 알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0살이 넘어서야 진실을 알 수가 있었다.


어릴 적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맡겨졌고, 중학교를 들어가던 시기에 엄마의 외삼촌이 결혼하시면서 외숙모가 들어오셔서 눈치가 보여 학교를 도중에 포기하고 서울로 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엄마의 외할머니, 그러니까 나에게는 외증조할머니를 그렇게 애틋하게 여길 수밖에 없던 사실과.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나의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가 재혼을 하셨던 것이었고 외삼촌 역시 그래서 성이 달랐다는 것을 엄마의 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분의 아내가 법적으로 친자확인 및 여러 가지 법적인 서류를 정리해야 하는 것을 통보하면서 알게 되었다.

정말 자식이 맞는지 친자확인을 해보자는 것과 친자지만 재산을 갖지 않겠다는 각서나 그런 부분들을 진행하고자 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엄마는 절대! 친 아버지로부터 서류상으로만 자식으로 되어있지 같이 살았거나 부모와 자식 간의 어떤 지원 같은 것이 없었으니까, 재산을 물려받거나 그런 생각조차 하시지 않았었다. 물론 약간의 복수심? 같은 것으로 만일 그렇게 된다면 집이라도 가져올까 라는 생각도 있으셨을지 모르겠지만 그러지 않으셨다. 그리고 상속포기를 하셨다. 아버지라는 끈을 끈고 싶으신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지금은 덤덤히 말씀하셨지만 그 어린 시절 얼마나 무섭고 마음이 아팠을지,

얼마나 외할머니를 원망하셨을지, 돌아가신 친아빠를 아빠라고 부르기 싫을 정도로 얼마나 미워하셨을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학교를 가고 싶어서 학비를 보내달라고 편지를 보냈었더란다. 

그랬더니 그분의 아내가 편지를 전달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직접 서울로 찾아가셨었는데 주지 않았고 학교를 갈 수 없게 되어서 딸인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그 집에 마치 식모처럼 사셨다고 했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아빠라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어떻게 그래? '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쩌랴, 중학생의 나이 13-14살의 나이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다가 결국 엄마의 작은아버지와 연락이 되어서 부산으로 내려가서 공장에 들어가서 일을 하셨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부산 이모댁에서 살게 되셨다고 하셨다. 나에겐 이모할머니. 그래서 그런지 나도 증조할머니 이모할머니에겐 좀 특별한 감정이 있었던 것 같다.




몇 해 전 지금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외할머니가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뇌경색이 있으셨고 침해가 조금씩 진행이 된다고 들었는데 외할머니를 모시고 계시는 외삼촌이

그러니까 엄마의 이부형제. 가 엄마에게 뭔가 마음상하는 일이 있었는지 자꾸 꼬투리를 잡고 그랬던 모양이다. 이 또한 이해가 안 가는 점 중 하나인데.

엄밀히 말하면 엄마가 연락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만 아직 엄마의 엄마. 를 이부동생이 모시고 있으니까.

그전에는 때 되면 과일이나 김치도 담가서 보내드리고 그랬었는데 엄마랑 틀어져서는

전화번호도 바꾸고 이사까지 갔다고 한다. 그랬는데 외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시니까 계속 전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좋아 보이지 않는다.

돈이 들어갈 일이 많아지니 엄마에게 연락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  외할머니는 나도 참 좋아했는데 결혼하고 나서 뵈러 가지 못했다.

엄마도 이부형제인 외삼촌과 그렇게 하고 나서 가보지 못하셨다.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그 외삼촌이 잘못한 것들을 사과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에게 더 잘해야지,

자주 연락해야지 자주 찾아가야지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 #엄마의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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