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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떤 날

그럼 이제 학교 가지 마

나의 마음대로 하려던 내 마음을 포기하던 날

by 푸른산책

어쩌면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벌써 2년 전.

여름을 행해가던 늦봄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가을부터 다니기 시작해 5학년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던 그날,

그해 봄부터 자꾸만 숙제를 잘해가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간간히 체크를 하고 있었다.

기독교 대안학교이자 국제학교이기에 모든 과목이 성경을 기반으로 한 영어로 수업이 이뤄진다.

원어민 선생님들과 수업을 하고, 숙제는 대부분이 단어 찾기 숙제와 미리 책 읽어오기, 단어 외우기,

한국어 수업이 별도로 없기에 일기와 독서록은 한글로 적는다.


머리가 좀 큰 상태에서 들어갔기에 많이 힘들어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학교에 가기 싫다거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고 친구들과 지내는 것도 좋다고 했었기에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단어를 찾는 데 점점 더 많이 찾아야 할 단어들을 몇 개만 찾고 파파고를 돌려서 아무렇게나 적거나 숙제를 거짓으로 하는 횟수가 늘었던 것 같다. 교감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J가 숙제를 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숙제를 거의 해오지 않았다고,

그렇다 보니 또래 아이들과의 차이가 너무나 많이 나버렸다. 그것을 알고 난 뒤로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숙제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나는 책을 읽거나 블로그를 쓰거나 했다.

그런데 컴퓨터작업을 하는 것 또한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옆에서 책을 읽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숙제검사를 하는데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화가 났다.

"이렇게 하려거든 학교 안 다니는 게 나아, 그냥 일반학교 가도 되고,

학교 안 가고 집에서 홈스쿨해도 괜찮아. 숙제 자꾸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못 따라가고 어려운데 어떻게 할 거야. 학교 가지 마! "라고 말해버렸다.

"아니에요, 갈 거예요. 내일은 갈게요." 하더니 그날이 목요일이었다. 내일은 금요일이니까 금요일까지 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네 안 갈게요"라고 하는 것이다.


그전부터 아빠와 계속 이야기를 해오던 터이긴 했던 부분 중에

기초가 잘 안 잡힌 거 같은데 학원을 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과외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중간에 읽기 과외도 해보고, 파닉스 기초를 다시 잡는다고 학원을 보내기도 했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설득을 당해서 학원을 다녔던 아닌 본인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기에

그냥 다녔던 것 같다. 부모가 원했으니까.


학교를 안 가게 된 아이는

그 무렵 자세도 안 좋아서 다리, 골반의 균형이 틀어졌기에 필라테스와 복싱, 그리고 책 읽기, 영어학원을 다녔다. 아침에 동생이 학교를 갈 때면 아이는 늦잠을 자고, 혼자 밥을 차려먹고, 복싱을 가던가 필라테스를 다녀왔다. 그렇게 아이는 여름방학까지 포함해서 2 달반을 학교에 가지 않았다.

공식적인 입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학교를 쉬는 것이었다.


집에 있는 아이를 보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마치, 취업 안 하고 놀고 있는 백수를 보는 느낌이랄까.

12살 아이였는데, 어쩌면 나는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데로 가지 않는 아이로 인해서 화가 났던 것일까.


그 쉬는 시간들 속에서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그리고 나는 또 나 나름대로의 필요한 시간이었다.

정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요게벳의 노래"를 들으면서 갈대상자에 띄워 보낸 모세를 하나님께 맡기던 요게벳을 떠올리다가

내가 내 아이를 내 뜻대로 하려고 했구나, 하나님께 맡기지 못했구나 싶어 눈물을 흘렸었다.

그런데 사실은 아이문제가 아니라 내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아이를 책임지실 거라는 말씀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온전히 믿지 못했던 나,

그 갈대상자 안에는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을 강가로 띄워 보냈어야 했던 것이었다.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맡기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발견하고, 또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토요일 아침. 우연히 예전에 읽었었던 책을 다시금 꺼내보게 하셨다.

"하나님의 아이로 키워라"

나는 또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남편을 보자 또 울면서 이야기했다. "나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나님이 나를, 내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 같다고, J가 하고 싶은데로 해야 할 것 같다고, " 했더니 잘하고 있다며 토닥여주며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알겠다면서 같이 동의해 주었다.


사실, 학교를 잠시 쉬면서 아이가 한 학년 다시 올라가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서

다시 한번 5학년을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야기를 했더니 알겠다고 했었다.

문제는 동생과 같이 다녀야 한다는 점이었긴 하지만, 나중에 힘든 것보다 차라리 지금 좀 힘든 게 나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 아침 아빠와 나누는 이야기를 아이가 듣고 있었나 보다.

"J야, 너 어떻게 하고 싶어? 그냥 5학년 한번 더 할래? 친구들과 같이 6학년으로 그대로 올라갈래?" 물었더니

6학년으로 가고 싶다면서 우는 것이었다.

미안했다. 부모가 원하니 아이는 부모의 뜻에 따랐던 것이었다.


다시 학교를 가며 아이는 한층 밝아졌고, 여전히 어려움이 있지만

아주 조금씩 이긴 하지만 성실히 매일매일을 다시 쌓아가고 있다. 당장의 성정은 좋지 않을지라도

성실하게 해나가고 있으니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그날에 나는 내가 내 뜻대로 하려 했던 아이에 대한 마음을 포기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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