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생존기 10.
한 여름 대나무 숲에는 아디다스 모기가 그렇게 많은 지 처음 알았다.
초등학교 때 기억은 늘 가정폭력 이후 도망 다니던 에피소드들 뿐이다.
친구들이랑 재미나게 놀았던 기억보다도 도망 다니면서 겪었던 일들이 더 깊숙이 기억 속에 자리 잡은 것은 안타깝기도 하지만 새로운 경험도 많이 했던 것 같아서, 어른이 된 지금 내가 더 단단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아주 뜨거운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빠는 술에 잔뜩 취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객기 부리듯 집안의 물건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진열장에 있던 것도 던져버리고, 널어놓은 빨래도 다 넘어 뜨렸다.
제 성질에 못 이겨서 흰색 플라스틱 빨래통도 발로 밟았는데, 플라스틱이 부서지면서 발목에 상처가 났고 붉은 피가 흘렀다. 피를 보더니 더 흥분했다.
그런데 나는 아빠의 무서움 보다도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여름이라고 엄마가 흰색 캐릭터 티셔츠를 한 장 사주었고, 빨래통에 넣어놨는데 아빠의 피가 묻어 버린 것이다. '아... 어떻게 지우지'
아무튼 아빠의 폭력이 거세질 듯한 모습을 보이자 엄마가 눈치를 주었다. 밖으로 도망가자고.
그래서 누나와 나는 몰래 가방 한 개씩을 챙기고 몇 개의 짐을 넣었다. 당시 여름방학이어서 좀 길게 도망갈 것으로 예상됐다. 도망치기 전문가다.
옷을 챙기던 와중 내 눈에는 그 피 묻은 캐릭터 옷이 보였다. 오랫동안 나가 있는데 난 꼭 그 옷을 챙겨야만 했다. 그래서 아빠가 다른 데 있는 사이 몰래 그 피 묻은 옷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우리 셋은 밖으로 도망 나왔다.
웬만한 곳에는 다 신세를 졌던 터라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 댁으로 가기로 했다.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본 적도 없었다. 외할아버지와도 왕래는 잦지 않았다. 아빠와 외가의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인데, 자연히 뵐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며칠간 신세를 지러 외할아버지댁이 있는 시골로 떠났다.
외할아버지는 예전에 시골에서 한자를 제일 많이 아셨고, 순사도 하셨다고 들었다. 그리고 학식이 깊었기 때문에 점잖으시고, 감정을 별로 드러내지 않으시는 분이셨다.
오랜만에 뵀는데 정정해 보이셨다. 키우고 있던 소나 똥개들도 오랜만에 봐서 너무 좋았다. 나는 똥개 새끼들이랑 놀 생각에 벌써 들떴다.
할아버지는 크게 웃지는 않으시고, 미묘하게 웃으시며 기분 좋게 맞아주셨다. 그렇게 여름방학의 도피 생활이 시작됐다.
할아버지는 일부러 사위에 대한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분명 그 이유 때문에 온 걸 알기 때문에 더 말을 꺼내지 않으신 것 같았다. 아니면 누나와 나 몰래 엄마가 따로 말을 했거나.
엄마는 어렸을 때 나고 자랐던 곳에 다시 와서 삼시 세끼 밥을 지었다. 고기는 없었고 반찬도 맛이 없었지만 그럭저럭 맛있게 먹었다. 과자도 전혀 없었다. 강제 디톡스였다. 그 와중에 피 묻은 내 흰색 티셔츠도 열심히 빨아서 피도 지워냈다.
화장실은 여전히 푸세식이었다. 낮에 화장실을 가도 무서운데, 밤에 변소에 가고 싶을 때는 너무 힘들었다. 나는 아무 데나 오줌을 싸더라도 누나는 꼭 화장실로 가야 했기 때문에 밤에는 물도 마시지 않았다.
TV는 지지직 거려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매일 이상한 '타령'만 나왔다. 너무 심심했다. 그때부터 시골집 탐방을 시작했다.
먼저 툇마루를 지나서 바깥 왼쪽 방으로 가보았다. 여기에서 외삼촌들이 다닥다닥 붙어 지냈을 것만 같은 상상이 됐다. 유리상자 안에는 이쑤시개로 만든 거북선이 있었다. 걸작이었다.
엄마 말로는 셋째 외삼촌이 만들었는데, 형제 중 제일 말이 없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예민한 오빠라고 한다. 그리고 셋째 오빠는 성인이 되면서 홀연히 가족을 떠났다고 한다. 아무튼, 거북선을 찬찬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날 반나절이 훌쩍 가버렸다.
다시 툇마루로 나와서 안방 옆 창고로 가보았다. 이상하게도 안방 바로 옆이 나무 바닥으로 된 창고였다. 뭔가 을씨년스럽긴 해도 워낙 놀 것이 없어서 꾸역꾸역 안을 살펴보았다.
오래된 흑백 사진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천장에도 붙어 있어서 너무 무서웠다. 옛날 시골집들은 왜 사진을 저렇게 붙여 놓았는지 너무 무서웠다. 나한테는 추억이 깃든 사진이 아니니까 당연히 무서운 것이었다.
안으로 더 들어가 보니 장구와 사물북이 있었다. '바로 이거다.' 장구와 사물북을 가지고 나와 툇마루에 앉아 흥얼거리며 세게 쳐댔다. 한 여름 시골집 툇마루는 나 말고 아무도 없는 무릉도원이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니 똥개들만 짖어댔다.
이것도 질렸다. 일주일 정도 지났다. 오래된 전화번호부도 통달했다. 항상 툇마루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뒷모습만 보았고, 개똥 냄새나는 잔잔한 바람만 느껴졌다.
그때였다. 전화가 따르릉 울리는데 집에 아무도 없어서 내가 전화를 받았다. 아빠였다! 아뿔싸 전화를 받아버렸다. 아빠는 역시 술에 취해 있었고, 대충 거기에 있었냐는 이야기가 오갔던 것 같다.
엄마가 와서 얼른 전화를 뺏었다. 그리고 아빠와 대화를 하는데, 엄마가 흥분하여 아빠에게 욕을 하였다. 옆에 외할아버지도 있겠다, 엄마가 본인의 아빠를 믿고 싸움을 시작했다.
"이 나쁜 새끼야. 죽이려면 죽여라. 오냐, 죽여라. 나 여깄으니까 와서 죽여라!!!"
그리고는 수화기를 부술 듯이 끊었다. 곧바로 우리 셋은 이제 어떡하나 망연자실했다. 바로 짐을 쌌다. 외할아버지는 누나와 나에게 용돈을 쥐어주었다.
"얼른 가라. 내가 김서방 혼내련다."
"아부지, 잘 계셔요."
우리는 혹시라도 외할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멀리 가지는 못하고 외할아버지댁 뒷마당 대나무숲에 몸을 숨겼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 시간쯤이 지나 아빠가 택시를 타고 왔다.
외할아버지가 아빠를 엄청 혼냈다. 소리를 질러댔다. 아빠는 그나마 외할아버지를 무서워하면서도 존경했다. 외할아버지의 호통에 아빠는 다시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
휴... 그럼에도 이제 외할아버지댁에서는 지낼 수가 없어서 대나무숲을 통해 뒷길로 나가려는데 온몸이 간지러웠다. 아디다스 모기떼에 엄청난 공격을 당해서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프고 어지러웠다. 긴장감이 풀리니 그제야 모기떼가 있다는 걸 알았다.
팔을 휘적휘적 거리며 뛰어서 도망 나왔다. 온몸이 간지러워서 흙에 몸을 비볐다. 간지럼은 나아졌지만 온몸이 울긋불긋하고 피부는 여기저기 볼록볼록 올라와 있었다.
아빠 때문에 마을 앞길로는 가지 못하니 주민들만 아는 뒷길로 걸어갔다. 뒷길은 작은 강줄기와 이어져 있었다. 엄마 말로는 어렸을 때 이 길로 걸어와서 외삼촌들하고 수영을 많이 했다고 한다. 지금은 물살이 세져서 위험한데 그때는 마을에서 물줄기를 조절했기 때문에 괜찮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해가 쨍쨍이던 마을 뒷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진짜 덥고, 목적지도 없이 사막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게 내 기억의 끝이다. 우리가 버스를 탔는지, 기차를 탔는지, 물은 언제 먹었는지, 어디 가서 쉬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그랬던 기억이다. 외할아버지는 그 후 4년 정도 사시다가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가시는 길에도 엄마에게 신신당부했다. 누나와 나를 포기하지 말고 꼭 공부 끝까지 시키라고. 공부만이 살 길이라고. 엄마는 그대로 이행했다.
멋진 외할아버지. 내가 기억하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이다. 외할아버지댁을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외할아버지댁은 한 여름 평안한 곳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내겐 그대로 시간이 멈춘 채 남아있고,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