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생존기 9.
가정폭력에 노출된 나는 어떻게 자랐을까?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분명 안 좋은 쪽으로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유년시절이나 청소년기에는 나도 모르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도둑질도 종종 하곤 했다.
기질이 이상했다.
엄마 말로는 나는 분유만 줬다 하면 얌전히 잠만 자는 아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양육하기 너무 편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그런데 내 기억에는 유치원 때부터 다른 애들과는 좀 달랐던 것 같다. 나는 대장이 돼야 했다. 유치원 때 내가 제일 덩치가 큰 것은 아니었지만 '꼬라지'가 있어서 대장 노릇을 했다.
버스에서 제일 먼저 내려야 했고, 줄 설 때도 항상 첫 번째로 줄을 서서 인솔 선생님의 손을 잡고 다녀야지만 직성이 풀렸다. 달리기도 1등을 해야 했다. 레고 쌓기도 내가 1등을 해야 했다. 그때부터 내 '졸병'도 있었다.
말라서 눈이 튀어나온 애가 있었는데, 걔는 항상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나는 가정폭력이 심했던 시기에는 싸움질을 곧잘 했다. 그냥 시비가 붙을 만한 상황이면 참지 않고 발차기부터 나갔다.
축구를 하는데 어떤 애가 자꾸 내 발을 걷어차는 느낌이 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 짜리가 일부러 그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너무 거슬렸다. '한 번만 더 걷어차면 패버려야지' 내 머릿속에는 이 인풋이 들어왔다.
한 번 더 발이 걷어 차이자 바로 멱살을 잡아 버렸다. "죽여버린다. 너." 축구를 하던 모든 친구들이 이 모습을 지켜봤다. 거침없는 내 행동과 눈 빛을.
나중에 알았는데 이 친구는 싸움을 잘해서 반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한 대도 때리지 않고 죽일 듯한 기세로 이 친구를 눌러버렸다. 정상적인 사고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눈빛이 나왔을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수업 중 옆 친구를 두들겨 팼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문단별로 앉아 있었는데, 수업시간에 자꾸 옆에 놈이 약을 올렸다.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자꾸 시비 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되게 생각이 꼬였던 것 같다.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일어나서 발로 친구 얼굴을 차버렸다. 그리고 코피가 날 때까지 발로 밟았다. 옆에 친구가 말려도 계속 밟았다. 결국 선생님이 나를 잡아 세우고는 "정신 차려!!!"라고 말을 하고 뺨을 때리셨다.
선생님은 크리스천이셨다. 항상 검소한 모습으로 사셨고, 모범이 되셨다. 체벌을 하신 적도 없으신 분이다. 그런 분이 친구들 앞에서 내 뺨을 때리셨다. 확실히 내가 정상은 아니었나 보다.
그 이후로도 자잘한 싸움들이 잦았다.
복도에서도 동네방네 소리치며 싸우고, 문단을 다 걷어내면서 싸우기도 했다. 누나는 6학년이어서 바로 내 옆반이었는데 내가 싸울 때마다 누나 친구들이 "야, 네 동생 또 싸운다."라며 말을 하곤 했을 정도였다.
결국 이 폭력성은 내부로도 향했다. 누나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내가 6학년 때는 힘이 어느 정도 생겨서 누나와 몸싸움을 해도 비등한 상태가 됐다.
왜 싸웠는 지도 기억난다.
여름에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는데 누나가 본인 것을 다 먹고 내 걸 한 입 베어 먹었다. 나는 먹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누나는 약 올리면서 또 한 입 베어 먹었다. 그게 싸움의 시작이었다.
별것 아닌 일이었는데 나는 주먹으로 누나를 때렸다. 한 대로 그치지 않았다. 안경 쓴 누나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때렸다. 누나도 물론 저항하면서 힘으로 막아섰다. 나는 그때 느꼈다. '내가 힘이 많이 쌔졌구나.'
그 이후 며칠 안 있고 또 싸움이 있었다. 누나는 충격을 받았는지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고, 아빠는 밤에 나를 초등학교 놀이터로 데려가서 낚싯대로 먼지 나게 때렸다.
그런데 엄마는 이상하게 날 체벌하지 않았다. 엄마는 이 사건 이전에는 무서울 정도로 나를 혼냈었는데, 이 사건 이후로는 더 이상 나를 체벌하지 않았다.
엄마는 느꼈을 것 같다. 이제는 이 아들이 체벌을 당할 나이가 지났고, 때린다고 말을 듣지도 않을 것이라는 걸.
그렇게 누나와 4년 정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담을 쌓고 살았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정도가 되어서야 다시 조금씩 누나와 이야기를 했다. 중학교 1-3학년 시기는 정말 어두웠던 시기이기에 내 인생에서는 정말 지워진 채 뚜렷한 기억이 없다.
누나는 지금 아이 둘을 낳고 아주 잘 살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예전의 기억이 떠올라 항상 누나에게 미안하다. 얼마 전에는 내가 술에 취해 누나랑 통화하다가 예전에 못 살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었다.
누나는 다 지난 일이라며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내가 힘이 되어 주었어야 했는데 오히려 괴롭혔던 사람이었던 것이 항상 후회로 남아 있다.
도둑질도 굉장히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잡히기도 했다.
도둑질의 첫 번째 상대는 아빠였다. 유년기 때 아빠가 세탁소를 하면서 오후에는 낮잠을 잤다. 누군가 가게를 보긴 해야 하니까 아빠는 1시간 정도씩 나보고 가게를 보게 했다.
당시 세탁소는 동전거래가 많았기 때문에 찬장에는 100원부터 500원까지 동전이 다양하게 쌓여있었다.
난 그 동전들이 탐났다. 처음에는 100원씩 훔쳤다. 그러다가 간덩이가 커져서 500원씩 훔치기도 했다. 동전을 훔칠 타이밍이 되면 나는 아빠가 자고 있는 문간방의 커튼을 조용히 살짝 닫았다.
그리고 찬장을 살짝 열어서 동전 소리도 나지 않게 후다닥 동전을 훔쳤다. 당시에 들켰는지 안 들켰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 햇살이 가득하고 따뜻했던 오후에, 하얀색 커튼이 살랑살랑할 정도로 바람이 솔솔 불던 때 난 아빠의 동전을 훔쳤었다. 그 장면은 선명하게 내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그때부터 나의 모든 감각이 예민해졌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제대로 들켰던 기억이 있다.
아빠가 세탁소를 접기 전이니 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 전이었을 것이다. 때는 97년도 이전.
그날은 일요일 아침이었는데 아빠는 안방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작은방에서 몰래 나와 세탁소 찬장으로 가서 동전을 몇 개 훔쳤다. 분명 짤랑 소리가 날 테니 휴지로 각 한 개씩 감쌌다.
모든 감각을 집중해서 짤랑 소리가 나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주머니가 없는 바지여서 반팔 행커칩 자리에 동전을 넣었다.
밖으로 나가려면 안방을 지나쳐서 가야 했다. 도둑질을 마치고 오락실로 스-윽 나가려는데 아빠가 막아세웠다.
"야 거기 튀어나온 거 뭐냐."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면 되는데 우물쭈물했고, 아빠가 꺼내서 보니 동전들이었다. 도둑질을 들켰다. 혼이 나긴 했는데 크게 혼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뒤 또 동전을 훔쳤다. 몇 번 더 훔쳤지만 걸린 것은 한 건이었다. 아빠가 배달을 간다며 가게를 보라고 했다. 그동안 500원짜리를 꽤 훔쳤다. 한 2천 원어치. 97년도에 2천 원이면 큰돈이다. 점점 간이 배 밖으로 나와서 훔치는 돈이 커졌다.
아빠가 가게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숨겨뒀던 돈을 가지고 오락실로 갔다. 그런데, 게임을 한참 하고 있는데 누나가 왔다. "야 너 아빠가 오래. 돈 훔쳤냐?"
큰일 났다. 또 걸렸다. 아빠는 자꾸 돈이 안 맞는 것 같아서 배달 나가기 전에 돈을 다 세어놓고 갔다. 다시 와서 셌는데 돈이 크게 차이가 나서 펑크 난 것을 알았고, 내가 훔쳐갔다는 것을 바로 직감한 것이다.
엄청 두들겨 맞았다. 한 3일에 걸쳐서 맞았다. 아빠가 술이 취했을 때는 불려 가서 뺨도 맞았다. 그게 아빠에게 제대로 맞았던 기억이다.
엄마의 일당도 훔쳤다.
엄마는 야간 일을 하고, 오전에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500원짜리만 훔치다 보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당시 엄마 일당이 하루에 3만 원도 안 됐을 것이다. 1만 원권이면 엄청 큰돈이었다. 난 그 1만 원을 훔쳤다.
엄마 가방을 뒤져보니 헤엑! 1만 원권 다발이 누런 봉투에 들어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 월급날이었던 것 같다. 그 1만 원을 훔쳤다. 그 돈을 가지고 흥청망청 쓰고 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 짜리가.
그 날밤 엄마가 날 조용히 불렀다.
"아들, 혹시 엄마 돈 봤어?"
"아니, 못 봤는데."
"응, 아니야. 엄마가 흘렸나 보다."
엄마와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돈을 훔친 것은 나라는 것을. 그냥 모른 채 했다. 지금까지도.
친구들 레고도 꽤 훔쳤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친했던 원희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정말 나를 존중해 줬었다. 그런데 그 친구랑 다른 친구집을 놀러 다니며 레고를 훔치곤 했다.
그 친구도 레고를 훔쳐서 나에게 주었다. 난 다른 장난감 없이 집에 레고만 있었기 때문에 그런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친구집에서 양말 사이, 팬티 사이에 레고를 숨겨서 훔쳐 나왔다. 그 못된 짓은 한 번도 들키지 않고 꽤 오랫동안 해왔다.
동네 점방에서 과자도 많이 훔쳤다. 학원 가방에 숨겨서 나오곤 했는데, 몇 번 도둑질하다가 한 번은 아줌마에게 들켰다. 그 아줌마는 내가 동네에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고, 엄마가 누군 지도 알았다.
잡혔을 때 엄마에게 꼭 말해야 한다며 엄마를 모시고 오라고 했는데,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반년 넘게 그 점방 대신 다른 곳을 다녔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으로 전화가 왔다. 엄마의 전화였다. 엄마가 점방에 있는데 잠깐 와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가기 싫다고 했다. 엄마가 다시 또 오라고 했다. 나는 다시 또 가기 싫다고 했다. 엄마는 정색하면서 꼭 오라고 했다.
나는 눈 오는 크리스마스이브에 그 점방으로 갔다. 그 아줌마가 기어코 엄마에게 말했던 것이다. 엄마도 그 점방을 거의 6개월 만에 갔기 때문에 이제야 알았다. 난 그동안 어느 것도 훔치지 않았다.
엄마는 크게 혼내지 않았고, 먹고 싶은 것을 다 사라고 했다. 나는 먹고 싶었던 과자들을 잔뜩 집었다. 정말 먹고 싶었던 것이 많았다. 그리고 난 그 점방 아줌마를 엄청 야려보고 집으로 왔다.
엄마가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 둘만 아는 비밀이 됐던 것 같다.
난 그 이후로 다른 친구들과 싸움질도 안 하고, 도둑질도 그만 멈췄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이런 일들이 전혀 없었다. 맞다. 체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엄마가 나를 조용히 감싸줬을 때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내가 하면 안 되니까 그만 멈춰야 한다는 것을.
나는 지금 딸 둘을 키우고 있다. 첫째 딸은 말을 굉장히 잘 듣는데 둘째 딸은 아무래도 기질이 나를 닮은 듯하다. 무엇이든지 거칠고 오버스럽다. 사람 속을 긁어서 효자손으로 맴매를 할 때도 있다. 그럴수록 둘째는 더 말을 안 듣는 것 같다.
나를 보는 것 같다. 엄마의 방식을 써보았다.
예전에 엄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주고, 안아주면 둘째가 고마워하는 것 같다. 뭔가 아는 눈치다. 베스트는 엄마의 방식이다. 그럼에도 마냥 참고 훈육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체득한 것처럼 지지와 이해가 참 훈육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꼭 우리 아이들도 엄마의 가르침대로 키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