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어렸을 때는 좋아했는데.

가정폭력 생존기 11.

by 소년의 초상

평생 아빠가 싫지는 않았다.


유년기에는 아빠랑 함께 있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머리가 크면 클수록 아빠에 대한 두려움과 미움만 커졌다. 유년기의 좋았던 추억만으로는 결국엔 미움을 이길 수 없었던 것 같다.




유년기에 아빠와 함께 있어 좋았던 추억이 어렴풋이 몇 개 기억이 난다. 아빠가 세탁소를 하기 전에는 동네에서 양장점을 운영했다. 본인도 당시에는 멋쟁이여서 조끼까지 만들어서 입었고, 바지 핏도 그 시대에 유행하는 나팔바지로 쫙 만들어 입었다.


그런 멋쟁이가 오토바이까지 타고 다녔다. 밖으로만 나돌아 다녔단 의미다.


우리 가족은 지금은 재개발이 된 엄청 오래된 동네의 골목길 샛방에서 살았다. 영화에서 보면 골목이 구불구불한 서울 달동네가 묘사되곤 하는데, 평지인 달동네로 보면 된다.


대문도 철문이 아니라 페인트 칠한 나무 문이었고, 고개를 숙여서 들어가야 할 정도로 대문 높이도 낮았다. 그런 집의 맨 구석지에 위치한 샛방에서 살았다. 그리고 아빠는 가게를 따로 열지 않고, 샛방 한편에서 양복을 만들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아빠는 그 동네 건달들을 상대로 양복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아빠는 양복을 만들 일이 없으면 오토바이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런 아빠와 함께 놀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엄청나게 떼를 썼다.


여느 때처럼 아빠가 멋들어지게 양복을 차려입고, 머리도 '히피 감성 장발 스타일'로 꾸민 후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려고 했다. 나는 바로 쫓아 나가서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데려가라고 난리를 피웠다.


당시 구불구불한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떼를 썼던 것 같다. 나의 잠재 기억 속에 그 골목에서 엄청 울었던 장면이 각인돼 다. 그 동네가 재개발되기 전인 20대 후반에 다시 한번 그곳을 찾아가 본 적이 있는데 내가 기억하는 대로였다. 나의 기억력이 정말 신기했다.


아빠는 어떻게든 나를 떨쳐 내고 오토바이를 타고 그냥 가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계속 울었다. 한참 울고 있었는데, 아빠가 골목길 모퉁이에서 숨어 있었는지는 몰라도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며 오토바이 앞자리에 태워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던 기억이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제일 오래된 일이면서도 원초적으로 아빠를 따랐던 기억이다.




구불구불 동네에서 계속 살았던 때의 기억이 또 있다. 역시 원초적으로 아빠를 따랐을 때라 아무리 어렸어도 좋았던 기억으로 각인돼 있는 것 같다.


당시 동네에 나이트클럽이 하나 있었다. 90년대 초반으로 기억하는데, 클럽 안에는 외국인 여성들이 봉에 매달려 춤도 추는 그런 곳이었다. 왜 내게 그런 기억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레드카펫이 깔려 있는 클럽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뿌연 연기도 기억이 난다.


그런 곳이었으니 동네 건달도 많았을 것이다. 나는 별명이 똥쟁이였는데, 오줌쟁이인 집 앞 횟집 아들과 제법 잘 놀았다. 그날도 함께 골목길을 뛰어다니면서 놀고 있었는데 클럽 앞에 번쩍번쩍한 검은색 각그랜저가 있었다.


나야 비싼 차인지도 몰랐고 그냥 멋져 보여서 보닛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와이퍼를 좌우로 계속 움직였는데, 그게 뜯어졌던 것 같다.


건달들이 나와서 막 나를 혼내는데, 동네 아저씨가 그 모습을 보고 아빠를 데려왔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도 보면 동네 사정을 서로 다 아는데, 그런 분위기였다.


나는 곧바로 나무 뒤로 숨었고, 멀리서 보니 아빠와 건달이 말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고, 그 이후 상황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나한테는 좋은 기억이다. 내가 보기에는 건달들이 아들한테 뭐라고 하니까 아빠가 대신 싸운 것 같아 보였다.


영화 '친구' 마지막 장면에서 준석, 동수, 상택, 중호 등 친구 넷의 어렸을 적 모습과 함께 성인이 된 상택이 내레이션으로 '준석이는 동수 편을 들어줬던 것 같다'는 대사가 나온다. 마치 그런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장난감 절도 사건이다. 구불구불 골목길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 처음으로 세탁소를 열었고 문간방에서 살았을 때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서 1군 건설사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와 있다. 그러니 이곳도 엄청 오래된 동네였을 것이다.


이곳에는 아이들이 많이 살았다. 동네 철물점도 있고, 떡집도 있고, 주택가도 많이 있고, 그 당시 고급 연립주택도 있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짜리 아파트.


우리 집은 세탁소를 했으니 그중에서도 제일 가난한 편이었다.


어떻게 그것을 알았냐 하면, 다른 친구들 집에는 '겜보이'가 꼭 하나씩 있었고, 팩도 정말 다양했다. 그런데 우리 집은 없었다. 우리 집은 사달라고 졸라도 사주지 않았다.


자전거는 사주었어도 겜보이는 사주지 않았다. 그걸로 난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다.


요즘 애들은 본인들이 사는 아파트와 평수로 급을 나눈다는데, 내가 어렸을 때는 겜보이로 급을 나눴다. 어떤 팩이 있냐가 중요했다. 난 아예 가지지도 못했으니, 친구 집에 가서 한 판 씩 즐기는 수밖에 없었고, 그런 권력으로 친구들은 나를 무시했다.


근데 나는 유년기부터 대장기질이 있어서 대장은 되고 싶었고, 어느 날은 엄청 큰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친구들은 이제 대놓고 나를 무시하면서 겜보이도 시켜주지 않자, 나는 고급 연립주택에 사는 친구에게 "내가 네 거 장난감 싹 다 훔쳤다. 메롱" 하고 집으로 도망가버렸다.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정말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 거짓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렇게 아무 생각 않고 가게에 앉아 있었는데, 그 연립주택 식구들이 가게로 쳐들어 왔다. 대뜸 아빠에게 시비조로 아들이 장난감을 싹 다 훔쳐갔다는데 확인을 해야겠다며 언성을 높였다.


아빠는 아들이 그럴 애 아니라며 좋게 말했지만, 상대방이 계속 도둑놈 취급을 하자, 아빠는 내게 "네 장난감 싹 다 가져와"라고 말을 했고 나는 내 장난감을 싹 다 가져왔는데, 겨우 플라스틱 바구니 하나였다. 엎어서 보여주기도 애매한 양이었다. 그냥 눈으로 대충 보였다.


아빠는 장난감 바구니를 빼앗아서 그대로 가게 바닥에 부었다. "어디 찾아보쇼."


연립주택 식구들은 꽁지 나게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리고 아빠는 바로 가게 문을 닫고, 근처 초등학교 앞으로 나를 끌고 갔다.


"사고 싶은 장난감 다 사라."


처음이었다. 내가 가진 장난감은 거의 자동차였다. 자동차는 5천 원 안으로도 살 수 있는 금액대였기 때문인데, 내가 사고 싶은 것은 변신로봇이었고 그것은 거의 3만 원에 육박했다. 크기도 제법 컸다. 웅장했다.


예전에 동네 문방구 하시던 분들은 떼돈 벌었을 것이다. 지금도 장난감이 3만 원 하는데, 30년 전에 그 정도 해 먹었으면 정말 사기꾼들인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으로 변신로봇을 갖게 됐다. 내 기억엔 '슈퍼그랑죠'였다. 슬프기도 하지만 반대로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유년기에는 확실히 아빠가 좋았던 것 같다. 목욕탕도 함께 다니고 동네 뒷산도 매주 일요일 함께 다녔다. 세탁소를 할 때는 거의 같이 붙어 있었고, 살가웠던 것 같은데 내가 머리가 크면 클수록 아빠를 거부했다.


낮과 밤이 다른 사람이었고, 술만 먹으면 폭력적으로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럴수록 괴리감이 커졌고, 엄마와 아빠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어린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고, 왜 아빠를 밀어내고 미워해야 했으며, 마지막까지도 원망 가득하게 살아야 했는지 억울하기도 하다.


별 수 있겠나. 어렴풋이나마 좋았던 기억을 남몰래 간직한 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위안 삼으려 한다. 누구도 날 위로해 줄 수는 없는 것 같다. 그저 그때의 그 기억뿐인 것 같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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