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는 있지만 쓰지는 않는 사람들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 5.

by 소년의 초상

대화는 시작부터 어긋난다.
질문은 형식이고
대답은 기다리지 않는다.




말이 끊기면
숨을 고르는 게 아니라
다음 이야기를 준비한다.


내가 말하는 동안에도
고개는 이미 다른 쪽을 보고 있다.

“아, 그게 아니라”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아니라는 건 내 말이고
그다음부터가 진짜 이야기다.


상대의 말은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짧은 발판 정도로 쓰인다.


밟고 올라서면
뒤는 돌아보지 않는다.


공감하는 척은 한다.

맞장구도 친다.

하지만 방향은 늘 같다.
결론은 항상 자기 쪽이다.


대화가 끝나고 나면
무언가 한참 이야기한 것 같은데
정작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기분이 든다.


그 사람은 만족해 보인다.
오늘도 잘 풀었다는 얼굴이다.

혼자 말했으니까
중간에 막힐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생각한다.
말을 많이 한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들은 사람이

누군지.


대화는 보통
말의 양이 아니라
자리를 나누는 문제인데
그 자리를 전부 차지하면
혼잣말이 된다.


그 사람은 오늘도
누군가와 오래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혼잣말 같을 것이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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