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소주방 아주머니

내겐 아무렇지 않았던 날들 18.

by 소년의 초상

신내림을 받은 사람(무당)은 정말로 길흉화복을 알아맞힐 수 있을까?


나는 복채를 지불하고 사주풀이를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어렸을 적에는 동네 소주방에 이상한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그렇게 사주풀이를 잘해서 용하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 아주머니와 관련한 이야기다.




아빠가 엄마를 너무 못살게 하니까 엄마는 집을 나간 적이 있다. 누나와 나까지 놔두고 그냥 집을 나가버렸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해는 됐다. 눈으로 본 것이 있으니 도망간 엄마를 원망할 수 없었다.


엄마가 집을 나가자 아빠는 누나와 나를 초등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오랫동안 결석을 했던 것 같다. 집에 오는 전화도 못 받게 했다. 요새는 이런 행동을 하면 바로 아동학대로 잡혀갈 텐데, 너무 아쉬운 시대를 살았던 것 같다.


누나는 청소년기가 오자 아빠를 따라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는 나만 데리고 여기저기 끌고 다녔다. 밤이고 낮이고 항상 취해 있으면서 밖으로 외출할 때는 나를 끌고 다녔다.


내가 왜 아빠를 따라다녔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가장 큰 마음은 무서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따라나서야 그나마 누나는 놔둘 테니, 희생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아빠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스쿠터도 운전했다. 그리고 앞 좌석에는 나를 태웠다. 그 상태로 넘어진 적이 꽤 있다. 옆으로 스르륵 넘어질 때 그 무서움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빠의 손아귀에서 아무도 나를 구해줄 수는 없었다. 아빠는 넘어진 스쿠터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다시 나를 앞에 태우고 그대로 운전해서 갔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위험한 줄 알면서 그 스쿠터를 타야만 했던 내가 참 불쌍하다.


아무튼, 어린 마음에 너무 창피했던 일이 있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나서 아빠가 나를 여기저기 끌고 다니다 보니 스스로도 지쳤을까? 갑자기 골목길 한복판에 앉았던 적이 있다. 그냥 골목길 한복판에 주저앉았다.


나는 그런 아빠를 멀찌감치 서서 쳐다보고 있었다. 창피하니까.


아빠는 그런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나도 앞에 앉으라고 했다. 그때 시간이 오후 4시쯤 됐을까?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골목이었다. 잠시 고민을 했지만 나도 그 골목길에 주저앉았다.


아빠는 술주정을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그냥 술주정만 했다. 나는 그대로 맞은편에 앉아서 그 소리를 하염없이 듣고 있어야만 했다. 그 사이 우리 둘을 지나쳐 가는 많은 형, 누나들이 보였고 너무 창피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 오기가 발동하여 창피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아빠는 나를 또렷이 쳐다보지 못했지만 나는 또렷이 아빠를 쳐다보며, 마치 경청하고 있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중요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했다. 그게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척'도 힘들었다. 오래된 골목길이라 바닥이 울퉁불퉁했는데, 맨바닥에 앉아 있다 보니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그래서 양 손바닥을 엉덩이 밑으로 가져갔다. 조금이라도 안 아프려고 그렇게 앉아 있었다. 이런 행동으로 인해 내 마지막 자존심도 바닥을 치고 말았다.




일주일 정도 흘렀을까? 아빠는 엄마를 계속 찾지 못했고, 계속 나를 끌고 다녔다. 나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녔던 것 같다. 아빠가 술 마시러 식당에 들어가면 거기서 번데기 안주나 좀 먹고, 식당에서 챙겨주는 밑반찬으로 끼니를 때운 것 같다.


여기저기 쓸고 다니다가 결국 닿은 것이 어느 소주방이었다.


그 소주방 아주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머리는 깔끔하게 묶었고, 눈 화장은 엄청 진하게 했었다. 눈은 부리부리하게 떠서 사람을 노려보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상대방을 꿰뚫는 듯이 째려봤다.


소주방은 자그마한 나무닷지가 있었고, 사람들은 그곳에 옹기종기 붙어 앉아 소주방 아주머니가 주는 안주에 술을 마시곤 했다. 그리고 용하다는 사주풀이도 한 번씩 서비스로 받은 것 같다.


아빠는 소주방 아주머니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복채를 지불했던가? 서비스였던가? 아주머니가 말하던 것이 조금 기억이 난다.


"당신 여편네 일하는 곳에서 동쪽으로 100M 가봐. 거기 있을 거야."


정말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이 사건 전에도 아빠가 엄마를 괴롭혀서 누나와 셋이 집에서 도망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 갈 곳이 없어서 엄마가 일하는 식당 근처에서 잤던 기억이 났다.


엄마가 일했던 식당 근처에 상하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는 사연이 있는 엄마 친구가 한 명 살고 있었다. 혼자 타지에 와서 쉬는 날 없이 일만 하는 분이었는데, 정말 2명 누우면 끝인, 좁은 상하방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 셋은 그 상하방에서 몇 번 신세를 졌었다.


딱 그 상하방이 엄마 식당 근처였고,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정확히 100M 근방인지는 어린 내가 알 길이 없었지만, 골목길을 헤쳐 나가면 그 정도 거리는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왜 그랬을까. 굳이 아빠한테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해버리고 말았다.


"아빠, 나 거기 알 것 같은데요."




아빠와 나는 곧바로 소주방을 나와서 엄마 가게 앞으로 갔다. 거기서부터 나는 아빠를 이끌고 걸어갔다. 상하방에 도착했다. 문을 열었다. 정말로 엄마는 이불을 덮고 거기서 자고 있었다. 엄마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대체 왜 그랬을까? 엄마가 있을 것 같으면 숨겨주면 되는데, 왜 굳이 말을 했을까?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우리의 쉼터도 없어지게 될 텐데. 왜 그랬을까. 나중에 커서 생각해 봐도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그냥 배신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뭐 어린아이가 엄마와 지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려 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엄마에 대한 배신이었다.


내가 좀 힘들더라도 엄마에게는 평화를 주었어야 했다. 아빠가 나를 끌고 다니는 것 말고는 때리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누나도 그 시선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아빠를 이끌고 친히 상하방으로 간 장본인이다. 그것은 평생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을까? 아빠는 그 소주방의 단골이 됐다. 나도 이따금씩 데리고 다녔다. 난 거기 앉아 소주방 아주머니의 전유물이 돼야 했다. 아주머니는 항상 똑같은 머리스타일에 째려보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그 눈빛은 마치, '정말 신기 가득한 능력으로 집 나간 여편네를 찾아냈는데, 그 장소에 있던 것은 바로 저 조그마한 아들놈이고, 저 아들놈으로 인해 나의 능력은 보편적인 사실로 확인됐다.'로 읽혔다.


그렇지만 나는 그 '신기'를 믿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믿지 않았다. 내가 찾은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로부터 또 몇 년이 흘렀을까? 소주방 아주머니가 공개수배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기도 치고, 곗돈을 들고 날랐다는 것이다. 범행수법은 예상이 됐다. 그냥 팩트 몇 개 대충 던지고 '신기' 있는 것처럼 행동한 뒤 사람들을 혹해서 사기를 쳤을 것이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조금은 무거운 마음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스스로 다음과 같은 생각을 새로 인풋 했다.


'그래! 내 생각이 맞았어. 그 아주머니가 사기꾼이었어. 난 그냥 정말로 힘들어서 엄마를 찾았을 뿐이야. 난 배신자가 아니야.'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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