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희망이라는 것

내겐 아무렇지 않았던 날들 19.

by 소년의 초상

나라고 항상 불행한 인생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분명 좋았던 기억도 남아 있다.


그런데 그 좋았던 기억은 항상 오래가지 못했고, 행복한 기분이 들어도 이 느낌이 오래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겐 시한부와도 같았다.



두려움, 긴장감, 실망감, 분노, 체념. 나의 학창 시절을 대변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시한부 희망이라는 것이 남아 있다.


되게 추상적인 용어 같지만, 그때의 느낌을 대변하는 단어는 시한부 희망이라는 것이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아빠가 30년 세월을 매일같이 술만 마신 것은 아니었다. 일을 할 때는 깔끔하게 해서 거래처나 손님들은 꽤 만족해했다.


술만 입에 안 대고 꾸준히 일했다면 우리 집도 돈을 많이 벌어서 집도 사고, 빌딩도 사고, 떵떵거리면서 살았을 것 같다.


그만큼 아빠는 부지런하고 깔끔한 사람이었다. 단지 그놈의 술이 문제였지만...


아빠가 젊었을 때는 몇 날 며칠을 술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너무 힘들면 다시 열심히 몸을 만들고 일을 했다.


술 마시고 몸이 힘드니까 그만 멈췄다. 우리 셋한테 가정폭력을 한 것에 대한 죄책감은 없었다. 항상 그런 패턴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고 일을 하면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잤다. 헬스장도 다니면서 몸을 만들었다. 정말 부지런했다. 술을 안 마시면 저녁 9시에는 잠을 잤던 것 같다.


그런 평화의 시기가 오면 엄마, 누나, 나, 이 셋은 시한부 희망을 갖기 시작한다.


사람은 동기부여가 있어야 살 수 있다. 그중에 희망이 가장 큰 동기부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희망을 꿈꾼다.


우리도 그랬다.


다만 문제는 시한부 희망이라는 것이 큰 단점이었다. 당장 몸과 마음은 편하지만 몇 수 앞까지의 희망과 계획은 사치였다.


아빠가 어떻게 또 돌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비가 와서 기분이 울적하다고 술을 시작할지, 아니면 일을 하다가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술을 시작할지, 오랜만에 청년회 친구들을 만나서 술을 시작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저 우리의 계획이나 바람과는 달리, 아빠가 술을 언제 다시 또 마시기 시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희망은 다시 짓밟혔다.


이것이 바로 시한부 희망이었다. 항상 똑같은 루틴으로 잠시나마 희망을 꿈꾸고, 곧바로 와르르 무너진 삶이었다.




이러니 항상 냉소적인 태도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또다시 엄습하는 불안감이 나를 찾아왔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불안감. 친구들과 저녁 10시까지 놀 때 다른 친구들은 집 걱정 없이 해맑아 보였다. 하지만 난 '아빠가 술을 마셨을지도 모른다, 엄마와 누나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라는 예측 가능한 불안감이 항상 나를 휘감았다.


그래서 집에 전화를 자주 했다. 태연하게 누군가 받아줬으면 했다. 그러나, 떨리는 목소리로 누나가 전화를 받는다면... 난 곧바로 집으로 향하곤 했다. 엄마와 누나를 위해서.




시한부 희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 것 같다.


좁은 주택 2층에 월세로 살면서, 아빠는 여전히 제왕처럼 군림했었고 그런 아빠의 기분을 살피기 위해서 우리 셋은 항상 전전긍긍했다.


소풍을 가더라도 피곤한 엄마를 위해 김밥은 맛이 없다며 유부초밥을 싸주라고 했던 것 같다. 유부초밥은 그냥 마트에서 유부세트만 사면 됐으니까.


나른 이른 눈칫밥으로 인해 시한부 희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그런 기분을 느꼈을 때 마음이 쓰렸을 뿐이지, 그 기분은 그냥 내 인생 전체에 남아 있는 아우라 같은 것이 됐다.


어른이 되어서도 알게 모르게 긴 행복이나, 앞으로 나의 미래 계획 등은 사치라고 느꼈고, 단발성 인생을 살아왔다. 희망을 갖는 것은 불안했다. 그래서 정말 기쁜 순간에도 입을 오므리고 웃었다. 습관이 됐다.




항상 아빠가 빨리 돌아가시길 바랐다. 인생의 목표는 오직 그거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아빠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슬픔보다도 무언가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괜히 불쌍한 마음도 들었지만 정말 불쌍한 건 나였기에 그 기분은 바로 지워버렸다.


장례식장에서 정신없이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나서 새벽녘에 혼자 아빠의 영정 앞에 섰다. 소주병 하나만 들고.


가만히 영정사진을 응시했다. 모진 소리가 나올 것 같아 그만 시선을 내리고 바닥에 앉아 깡소주를 마셨다. 영화에서 보면 쓰디쓴 소주도 벌컥벌컥 마시던데, 나에겐 쓴 맛이 심하게 나서 마시다가 말았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 있는 엄마에게는 들리지 않게 속으로 이야기했다.


'아빠 이제 난 행복하게 살 거네. 천국 가라고 말은 못 해주겠다. 그냥 어디 가서든 술은 그만 마시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시길 바랄게.'




지금 나는 시한부 희망을 버리고, 아이들 해외주식 ETF와 목돈수탁 적금 등도 정말 잘 운용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물론 나와 아내를 위해서도 소소하게 투자도 하고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다. 순간의 행복을 위해 해외까지는 아니어도 국내 방방곡곡으로 여행도 꾸준히 다니고 있다.


견고한 성처럼 쌓아가고 있는 가족들과의 추억과 함께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기대가 된다. 더 잘 해내고 싶다. 나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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