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생존기 26.
초등학교 6학년 봄, 아빠가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후 이야기이다.
아빠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후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기술로 취직을 했다. 집 근처에 있는 대기업 교복 수선업체였다. 아빠는 '세탁기능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었고, 젊었을 때부터 양장점과 세탁소를 운영해 봐서 탁월한 손재주가 있었다. 그 기술로 술 없이 꾸준히 일했다면 우리 집은 아마 부자가 됐을 것이다.
아빠는 얼마 되지 않는 월급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이 직장도 얼마 가지 못했고 다른 일자리를 구했다. 바로 대단지 아파트 상가 세탁소인데, 이런 곳은 정말 바쁘기 때문에 세탁소 부부 내외 외에도 흔히 말하는 '시다'가 필요했다. 아빠는 그 '시다' 일을 시작했다. 아빠 성격에 '시다'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아무튼 몇 달은 일을 했던 것 같다.
세탁소 부부 내외 역시 아빠의 손재주를 높이 샀다. 가족끼리 오리고기 음식점에서 외식도 하곤 했다. 그렇게 안정적으로 잘 지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또한 오산이었다. 아빠는 일을 그만두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지났을까? 대뜸 아빠는 이상한 이유로 엄마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본인이 직접 세탁소를 다시 차려보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빠가 세탁소를 운영하긴 했지만, 술 때문에 제때 일을 하지 않아서 망했다. 세탁소는 신뢰의 문제인데, 아빠는 술을 입에 대기만 하면 그 신뢰를 깨버렸고 손님들은 우리 세탁소에 오질 않았다. 이 때문에 엄마는 아빠의 창업 제안을 거부했었다. 물론 돈도 없었다.
엄마는 술에 취한 아빠의 괴롭힘을 이길 수 없었다. 엄마는 곗돈을 청산해서 다른 동네 주택가에 아빠의 세탁소를 차려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권리금만 주고 그대로 인수한 것 같았다.
일단 큰 포부와 함께 가게를 다시 차렸으니, 엄마는 돼지머리도 사서 절을 올렸다. 그런데 첫날부터 삐걱댔다. 아빠는 역시나 술에 만취해 버렸고, 가게에 왔던 지인들은 그런 아빠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모두 일찍이 귀가해버렸다. 준비했던 음식은 모조리 쓰레기통 행이었다.
아빠는 가게에서 잠을 자고, 엄마와 나는 나의 낡은 자전거에 일부 남은 음식을 챙겨서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엄마는 취기에 울면서 하소연했다.
"첫날부터 이러니 너무 속상하다 아들. 음식도 많이 준비했는데 고모는 와보지도 않네. 제발 세탁소 잘 됐으면 좋겠다."
어린 나는 다시 가게가 생겼다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아빠가 과연 제대로 세탁소를 운영할 수 있을지 믿음이 가질 않았다. 항상 의지력 약한 아빠에게 속아왔고, 술 때문에 또다시 속상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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