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선생님의 유고 시집
2년 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독립하면서 어머니는 많은 세월을 홀로 사셨다. 나는 어머니의 그 모진 세월의 적막함을 가늠할 수 없다. 박경리 유고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읽으면서 나의 어머니도 편안하고 홀가분하셨기를 빌어 본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시 <옛날의 그 집> 부분
나도 이제 나이가 들면서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열심히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얼마나 많은 세월을 그냥 흘려보냈는지. 지난 세월을 생각할 때마다 개운하지 않고 항상 뒷맛이 씁쓸하다.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 시 <산다는 것> 부분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속절없이 지나 간 시절들. 먼 여행을 떠났다가 되돌아온 것처럼 이제는 안개인 듯 구름인 듯 그 기억들도 흐릿해졌다. 언젠가 고향 집에 내려갔다 돌아오는 날, 본인 걱정은 하지 마시라며 인생은 풀잎 위에 이슬 같다던 어머니 말씀도 이제는 꿈결처럼 아득하다.
마음의 여행이든 현실적인 여행이든
사라졌다간 되돌아오기도 하는
기억의 눈보라
안개이며 구름이며 몽환이긴 매일반
- 시 <여행> 부분
가끔은 돌아가신 어머니 꿈을 꾸기도 한다. 3개월 먼저 모친상을 치르셨던 나이 지긋하신 대학원 지도교수님께서는 어머님 돌아가셔서 허전하지 하시면서 본인도 문득문득 어머니 생각이 나신다며 위로해 주셨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 시 <어머니> 부분
박경리 선생님께서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남기고 가신 시집 덕분에 나는 책상에 앉아 돌아가신 어머니와 홀가분하게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 이 글은 작가의 개인 블로그(blog.naver.com/happy-walker)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