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르스 스벤젠, [외로움의 철학], (청미)를 읽고
모든 사람을 의심했고, 모든 말의 저의를 따져야 했다. 타인은 지옥이었다. 그리고 이 지옥의 형벌은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당혹스러웠다. 나는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바는 거의 다 틀렸다고 판명이 났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바를 무너뜨리고 다시 질문해야 한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그 때 외로움은 더 이상 내게 형벌이 아닌 사람에 대한 이해로 들어가는 문이 되었다. 이른바 ‘외로움의 철학’이 시작된 것이다. 『외로움의 철학』 저자인 철학자 라르스 스벤젠도 지독한 외로움 끝에 외로움의 철학함을 경험했으리라. 본 책은 외로움에 관한 철학책이지만 더 나아가 사람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철학책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읽었다.
책은 총 8장이다. 1장에서 저자는 외로움의 본질을 캐묻는다. ‘외로움(loneliness)’은 결코 ‘혼자 있음(aloneness)’의 물리적 상태와 동치 할 수 없다. ‘외로움’이란 개인의 정서적 요소와 연관된 가치 판단의 개념이다. 홀로 있으나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는 반면, 무수히 많은 사람과 함께 관계를 맺고 있으나 외로운 경우가 있다. 관건은 “개인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의미 있는 것으로 해석하느냐”다.
그래서 저자는 2장에서 외로움은 개인의 감정으로써 주관적 현상이라고 명토 박는다. 저자가 주지하다시피 외로움엔 인지적 측면과 정서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외로움의 철학함에서 중요하게 다룰 것은 정서적 측면의 외로움이다. 개인마다 외로움의 감정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살펴봐야 외로움의 본질에 가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외로움을 촉진하는 요인들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3,4,5,6장은 외로움의 요인들 - 신뢰, 사랑과 우정, 현대의 개인주의 -을 살핀다. 신뢰는 외로움을 설명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타인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의 모험이다. 배신과 상처의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 신뢰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타인을 신뢰할 때 타인의 말과 타인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불신으로 인한 외로움을 예방하기도 한다.
사람의 명(明)과 암(暗) : 사랑과 우정
사랑과 우정 그리고 외로움은 사람의 명(明)과 암(暗)이다. 타인과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을 미분하고, 그 거리를 ‘0’에 가깝게 수렴하도록 하는 능력은 사랑과 우정에서 나온다. 그러나 타인과의 사랑과 우정은 역설적이게도 처절한 외로움의 바닥을 치고 올라온다. 사랑과 우정에 실패하여 외로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 외로움의 바닥을 치고 올라오면 사랑과 우정의 소통의 길에 다다를 수 있다.
개인주의에 대한 오해
많은 이들이 예상하듯 현대의 개인주의는 외로움을 유발하는 큰 원인 중 하나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다르다. 개인주의가 외로움을 유발하는 사회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 저자는 반문한다. 그렇다면 전체주의는 외로움이 사라진 사회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문제는 개인주의 자체가 아니라, 현대의 개인주의 사회가 개인에게 ‘고독(solitude)’을 허락하지 않는 것에 있다. 다양한 기술문명은 우리가 서로 지나치게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만들었다. 나의 제일의 타인인 ‘자아’와 소통할 수 있는 고독의 시간이 우리에게 부족하다.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는 고독의 부재이다.
외로움에 대한 책임
인간이 된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뎌내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8장에서 저자는 외로움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 개인의 외로움이 내면에서 시작되었든, 외부로 인한 것이든 간에 1차적으로 개인은 외로움의 감정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외로움에 책임지는 과정이야 말로 사람으로 되어가는 정도에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본 책은 철학은 물론 심리학, 소설, 시, 노래 가사, 사회 과학적 통계를 도구 삼아 외로움(loneliness) 자체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저자의 목적은 ‘외로움을 고찰함’이라 할 수 있겠으나, 책의 행간을 살펴보노라면 사람에 대한 이해, 곧 ‘인간의 복잡성에 대한 철학’이라 하겠다. ‘외로움’이라는 창을 통해 인간의 면면을 들여다보며 저자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확장한다. 어느 시인도 노래한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외로움의 1차적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쉬움은 있다. 주관적 사회고립으로 인한 외로움에 에너지를 쏟는 바람에 객관적 사회고립으로 인한 구조적인 외로움의 현상을 간과한 게 아닌가 묻게 된다.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독사, 이름 알 수 없는 이의 쓸쓸한 죽음에서 자유로울 자 누가 있으랴?’라는 나의 자조적인 물음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