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송금하려고 인터넷뱅킹을 열었다. 자주 쓰는 계좌에 엄마의 계좌가 있다. 자주 쓰지도 않으면서 자주 쓰게 될 줄 알고, 아니 가끔 어쩌다 보내면서 계좌 찾기 귀찮아서 저장해 놨다.
정기적으로 용돈을 보내지 않아도 부모님의생활이 된다는 건 감사한 상황이다. 감사보다는 당연시하면서 명절 및 특이사항 발생 시 가끔 이용하는편이다.이번 특이사항은 동생의 수술이다. 장천공으로 응급수술을 받았다. 별로 애틋함은 없는 사이지만 생각하면 어딘가 한쪽이 쪼그라들면서애잔함이 드는 그런 사이다. 망할 놈의 핏줄. 천륜. 뭐 그런 데서 파생되는 의무감 비슷한 감정이다. 병원에 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힘드니까 오지 말라했다. 난 곧이곧대로 듣고 가지 않았다. 병원에 있을 때 누군가 자꾸 찾아오는 것도 귀찮은 일일 수 있으니 환자 말대로 해야 한다며 정당화했다. 느껴지겠지만 가기 싫었다. 몸은 안 가도 돈은 가야 하는 세상이다. 몸이 못 갈수록 더더욱. 사람노릇은 돈이 한다는 말은 잔인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누나로서 노릇은 해야겠기에. 결혼을 하지 않은 동생간호를 엄마가 해야 하니 엄마에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생 온 식구 간호만 하는 우리 엄마는 전생에 나이팅게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지친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또 저민다. 그욱신거림은 인터넷 뱅킹 화면에서 멈춰 섰다.
자주 쓰는 계좌에서 불러온 계좌번호 아래 금액입력란에서 손가락이 갈등한다. 결국 앞자리 숫자를 바꿨다. 낮은 숫자로. 뭐 좋은 누나도 아니었겠지만 좋은 동생도 아니었으니서로 퉁치고 그 정도면 된다 싶은 금액을 송금했다. 기준은 나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서운할 수도 있지만 별 수 없다.
그 타이밍에 알림음이 울린다. 다음 달 학원비 결제를 요청하는 카카오톡 결제 url이다. 갈등하며 보낸 금액의 몇 배가 되는 돈을 몇 번의 클릭과 지문인식으로 수초만에 결제했다. 자식에게는 아낌없이, 부모에게는 아껴가며 살고 있다. 나쁜 년.
돈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과 같구나. 거꾸로 흐르려니 힘이 든다. 또 나쁜 년.
생각이 얽히기 시작하면 피곤해지니 미안해 않기로 했다. 내 자식도 그럴 것이고 우리네 부모님들도 그러했을 것이니 나 또한 자연스러운 거라고 우기는 중이다.면피용 발상으로 버티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