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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 어때 Sep 05. 2024

이별을 고하는 편지

다른 여자들한테는 그러지 마

안녕. 너를 알게 된 지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 너를 만나러 가는 날이 다가오면 언제나 밤잠을 설칠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지. 

'무슨 말을 할까. 날 보고 환하게 웃어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지. 오늘도 난 너를 기다렸어. 넌 항상 날 기다리게 하면서도 늘 당당했어. 아무리 기다려도  너한테 한 번도 투정 부리지 않았고 늘 괜찮다고 했지. 지난번에 만났을 때 네가 한 말 기억해? 그때도 넌 친절하지 않았지. 그래도 난 너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미소 지어주기만을 바보처럼 기다렸지. 그런 내가 우스운 걸까? 오늘은 좀 변했을까 기대를 했는데... 아. 변하긴 했더라. 더 재수 없게. 요새 직장 내 복잡한 이슈들로 힘들다는 건 알지만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그리고 그런 직장이슈 핑계를 대기엔 넌 처음부터 별로였어. 그런 너를 2년이나 따라다닌 나를 탓해야 하는 걸까.

오늘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삐딱하게 엉덩이를 의자에 누이듯 걸쳐놓고 나를 본체만체하면서 비수 같은 말들만 쏟아냈어. 말이라는 게 있잖아. 같은 말도 좀 더  예쁘게 할 수 있는 거잖아. 넌 그게 안 되는 게 참 아쉬웠어. 말로 천냥 빚을 지는 사람. '아'다르고 '어'다른 걸 모르는 사람. 그게 너였어.

너의 무례한 말들에 참지 못하고 처량하게 눈물을 흘렸지. 너에게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여자 중 하나일 테지만 나한테 넌 아니라는 거 알잖아. 모를 수도 있겠구나.  일 아니라면서 마지막까지도 그렇게 말해야 했어? 화가 치밀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넌 다음을 기약하고 날 돌려보냈지만 돌아오는 길에 결심했어. 헤어지기로. 네가 말한 그날 난 널 보러 가지 않을 거야. 나쁜 놈.  앞으로 나 아닌 그 어떤 다른 여자를 만나도 그렇게 하지 마. 네가 항상 우위에 있다는 그 거만함도 좀 내려놓고 조금만이라도 공감력이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 잘 지내라는 마음에 없는 인사는 생략할게. 이만.





이 편지의 주인공은 타목시펜 복용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자궁 내 부작용을 체크하면서 정기적으로 만나야 하는  산부인과 의사입니다. 얼굴에 묻은 밥풀 떼는 것처럼 자궁적출을 매우 쉽게, 게다가 불쾌하게 얘기하고 암을 재채기 정도로 대하는 모습에 서러웠습니다.  내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 위해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썼습니다. 대단한 호의와 친절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무례하지 않았으면. 조금이라도 환자편에서 공감해 줄 수는 없었을까요? 욕심일까요?
다행인 건 대부분의 좋은 의료진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의사를 폄훼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의사는 직업일 뿐. 오늘 만난 이 남자 개인에 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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