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기는 아직
"취미가 뭐예요?"
지금은 MBTI가 뭐냐고 묻는 게 당연한 것처럼 예전 소개팅이나 새로운 사람과의 아이스 브레이킹 대화 주제로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다. 나를 알고자 하는 질문지에는 항상 취미, 특기란이 있었다.
특별한 취미도 없고 내세울 것도 마땅찮을 때 하는 대답은 '음악감상, 독서, 영화감상' 정도였다. 취미는 검증할 것도 아니니 대충 좋아하는 것을 적으면 되는데 특기가 문제다. 잘하는 것이라. 혹시 시킬 수도 있으니 특기란을 쓸 때 한참을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살면서 특기라고 내세울 만한 것은 여전히 없지만 확실한 취미가 하나 생겼다.
"글쓰기가 취미입니다만."
글쓰기! 그 취미가 일종의 종교가 되어 나를 살리고 있다.
할머니와 한 방을 썼던 아주 어린 시절, 할머니가 틀어놓은 반야심경을 듣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마하반야 밀다심경'으로 시작하는 여러 문장을 줄줄 읊어대면서 불교를 접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크리스마스의 화려함에 반해 한동안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못하는 노래실력에도 불고하고 찬양단에 들어갔고 급기야 성탄절에 열리는 문학의 밤 성극에서 핍박을 이겨내는 주인공 역할을 맡기도 했다.
순수함이 점점 옅어지면서 그마저도 그만두고 '종교 없음'에 클릭하는 삶을 한동안 살았다. 그러다 30대 중반이 되어 새롭게 종교를 다시 갖게 되었다. 불교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닌 천주교로. 3대 종교 섭렵이다.
성당의 묵직한 오르간 소리에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고 미사포를 쓰고 두 손을 모으면 모든 것이 평온했다. 천주교를 믿는 이가 한 명도 없는 양가에 내가 밀알이 되어 남편, 아이들, 거기에 유교정신으로 한평생 살아오신 시부모님까지 세례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건 내가 살면서 한 일중 몇 안 되는 잘한 일이다.
한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 그것도 멈추었다. 꾸준함이란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아마도 팔자가 편해졌거나 다른 일들로 바쁘거나 했겠지만 모두 핑계다. 핑계만 대면서 한두 번 나가지 않게 되자 점점 멀어졌다. 처음의 죄책감 비슷한 불편함도 사라져 갔다. 그래도 힘들 때마다 염치없이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한다. 매달리고 의지할 곳이 있다는 든든함. 내 마음을 털어서 얘기할 곳이 있다는 안정감.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이유가 아닐까?
요즘 나에게 그런 의미에서의 종교적 역할을 글쓰기가 대신하고 있다. '글쓰교', '글짓교'쯤으로 할까? '교'자를 넣어야 종교 같은 느낌이 날 것 같은 틀에 박힌 발상에서 지은 이름이다.
내가 언제 글을 가장 열심히 썼던가 생각해 보니 무언가 엉켜서 복잡할 때였다. 그럴 때마다 '글쓰교'를 이용해 뱉어내고 후련함을 느껴왔다. 이번에도 병원 갈 일이 자꾸 생기면서 불안함이 커지자 다시 돌아온 곳이 이곳 브런치다. 심지어 주 5일 연재라니. 많이 힘들었나 보다.
가장 간절하게 기도했던 때와 제일 열심히 글을 썼던 시기가 겹치는 건 이 둘의 효과가 일정 부분 비슷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의 희로애락을 모두 퍼내는 일.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처럼 '타닥타닥 타다닥' 자판 치는 소리가 마음의 응어리를 쪼개고 있다. 쪼개진 파편들이 한 글자씩 새겨져 한 줄 한 줄 글이 되어간다.
남편은 쓰는 걸 싫어했다. 쓰는 걸 싫어한다기보다 고됨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아파했다. 글을 쓰면서 그 기억들이 선명하게 밀려와 나를 흔들고 불안이 덮쳐 모든 것을 쓸어갈까 우려했다. 그 우려를 이해하나 따를 수는 없었다. 글을 쓰면 오히려 벌어진 일들을 한 발짝 물러서서 보게 되고 어지럽던 마음에 바람길이 생긴다고 쓰기의 좋은 점을 피력했다. 글을 쓰며 펑펑 우는 날도 있고 퇴고한다고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피식피식 웃기도 한다. 울고 웃는 그 모든 일들이 나에게는 치료제가 된다. 글이라도 쓰고 싶어 질 때는 희망적인 거라고. 이조차도 하기 싫어지면 그때는. 아니다. 아무튼 결정적인 이유는 이거였다.
난 글 쓰는 게 행복해.
더 이상 무슨 설득과 설명이 필요할까?
처음에 교회 가는 걸 싫어했던 부모님이 내 고집에 못 이겨 '서로 사랑하라'는 좋은 말 듣고 올 테니 놔두자 했던 그때처럼 남편도 이제는 '당신 마음이 편해진다면 얼마든지 써.'라며 응원해 준다. 단 읽지는 않는다. 언젠가 마음이 단단해지면 몰아 읽기를 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래서 곳곳에 남편칭찬을 숨겨놓아햐 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의 정점이라 생각된 그런 날에도 글이 쓰고 싶어 진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취미가 글쓰기라 참 다행이다. 특기인 사람에 비해 보잘것없지만 취미라 더 좋다.
특기라고 하면 이리 어설프면 안 될 일이다. 취미라 함은 나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그저 내가 즐거우면 그만이다. 물론 혼자 보는 일기를 쓰는 건 아니니 약간의 수고로움을 곁들여야 하지만 나를 위한 치유에 그 정도 대가는 기꺼이 치를 수 있다.
어두울 때만 빛을 찾는 사람보다 밝을 때도 빛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데 난 늘 힘들 때만 찾아온 것 같다. 마치 종교처럼. 속상하거나 감사하거나 그 모든 나의 일상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행복하다. 쓸 수 있어서!
브런치가 있어 참 고맙다. 나의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이 있어서 매일매일 '좋아요'를 들을 수 있는 하루를 살게 해 주니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