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아닐 수도 있다고?

Bethesda 3단계

by 하늘 예쁨
갑상선 세침검사 결과 들으러 가는 날

그날이 왔다. 정말이지 지겹게 흐르지 않던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이 되었다.

검사 이후 집안의 온도는 외부보다 더 낮았다. 밖은 봄이 오고 있는데 나에게만 겨울이 머물러 있었다. 무던히도 애를 쓰는 남편.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엉엉 울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아왔던 나. 서로 부둥켜안고 열을 내려해도 어째 점점 차가워져만 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애쓰고 버티며 고됨 속에서 이 날을 기다렸다.


전날 일찍부터 누워서 뒹굴거렸다. 다양한 이야기들로 가득 찬 유튜브를 이곳 저것 쑤시고 다니며 시간이 훌쩍 지나가 날이 빨리 밝아오기를 기다렸다. 온몸이 쑤시고 옥좨오는 느낌이 여간 성가셨다.

가슴이 답답하고 공포가 밀려드니 침실에서 바라본 새벽어둠 속 가로등 불빛조차 섬뜩했다.

옥죄거나 말거나 죽겠거나 말거나 그건 내 사정이니 냉정하게 시간은 정해진대로 흘러 아침을 데려왔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한다. 뭐 준비랄 것도 없다. 잠옷에서 청바지 정도로의 환복이 전부다. 그까짓 옷가지가 무슨 대수겠는가. 마음의 준비를 해야지. 제일 어렵다는 그 평범함. 그것이 간절한 아침이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은 신나는 음악을 틀어도 흥이 나지 않는다. 특히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은 더 그렇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서로 눈치만 보다가 어색한 공기를 휘저으려 현실적인 이야기로 입을 뗐다.

"유방암 정기검진 일정도 다가오니 수술날짜 조율을 잘해야 될 것 같아."

곧 유방암 4년 6개월 검진이 있다. 하.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신경 쓰이고 예민한데 '묻고 더블로'도 아니고 이건 무슨 일인건지 삶에 멀미가 난다.

"슬라이드를 받아서 본원에도 내봐야겠지?" 일정이 늦어 세침검사를 2차 병원에서 시행해 대학병원 의견도 들어보고 싶었다.

"수술하기 전 여행 가서 원 없이 골프 치고 오자." 무언가 희망적인 얘기를 하고 싶어서 이말 저말 하고 있다.

두 군데 병원에서 초음파상 암일 확률이 높다고 했기에 우리는 결과를 듣기도 전에 이미 각오가 된 사람처럼 다음 스텝을 밟고 있었다. 스텝이 너무 나아가 난 이미 수술대에 누워있었다. 수술 이후의 상황까지도 고려하고 있을 만큼 멀리 가 있었다.


9시 진료. 첫 번째 순서다. 대기자 1번에 내 이름이 올라갔다. 각오한 결과라 아무 준비 없이 초음파 결과를 들을 때보다 담담했다. 한편으로 제발 변수만 없기를 바랐다. 암을 겪어보니 무조건적인 희망만이 능사는 아니다. 긍정은 심리적으로 좋은 효과를 가져오지만 가끔은 현실을 직시해 이성적인 판단을 빠르게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 과정 속에서 가장 바라는 것이 특이사항 없는 예상한 대로의 흐름이다.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는데 나를 부른다. 나이 들면서 내 이름을 가장 많이 불러주는 사람은 의료진이다. 생일상을 차려주려는지 생년월일과 이름도 사사건건 물어본다. 이름 많이 불러주면 오래 산다던데 여기서 유래된 말인가. 이렇게 병원에서 이름을 많이 불러주니 고장 난 곳 고쳐 쓰면서 오래 사는 건가 싶다.

인과관계는 모르겠고 아무튼 오래는 살고 싶다.


지난번 그렇게 쳐 울어대던 아줌마와 친절한 의사 선생님이 마주 앉았다. 컴퓨터 화면을 돌려 세침검사의 단계를 요약해 놓은 표를 보여준다. 장황하게 Bethesda 1단계부터 6단계가 있으며 각 단계별 특징과 진단명을 설명해 준다. 난 두괄식이 좋은데. 결론부터 얘기해 주면 좋겠는데 의사 선생님은 미괄식으로 천천히 설명한다.

I단계 (비진단/검체 불충분): 세포 부족으로 진단 불가 (재검 필요)

II단계 (양성): 암 가능성 낮음 (<3%)

III단계 (비정형/의의 불분명): 애매한 상태 (약 10~30% 악성 가능성, 재검 또는 경과 관찰)

IV단계 (여포종양/여포종양 의심): 20~30% 암 위험 (수술적 진단 고려)

V단계 (악성 의심): 60~75% 이상 암 위험 (수술 필수)

VI단계 (악성/암): 97~99% 암 확진


그래서 난 몇 단계?


"3단계가 나왔어요."

초음파상으로는 두 병원 모두 강력하게 암을 의심했었기에 예상 밖의 결과에 의사 선생님도 우리도 의아했다.

"결절 두 개를 검사했는데 두 개 다 3단계가 나왔어요. 크기가 좀 더 큰 건 2단계(양성) 예상했는데 3단계 나오고 악성을 예상했던 작은 것도 3단계가 나왔네요" 두 개 다 예상이 빗나갔다.

"그렇다고 암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어요. 세포모양 변화가 좋은 건 아니니까요."

3단계는 암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암이라고 확진도 할 수 없는 애매한 회색지대를 말하는 거란다. 애매한 건 사건도 사람도 다 내 취향은 아닌데.


'애매하다? 이건 뭐지? 좋은 건가? 아닌 건가? 그래도 암보다는 나은 건가? 아직은 아니라는 건가?'


이건 내가 염두에 둔 경우의 수에 없었던 터라 휴대폰에 빼곡하게 적어갔던 질문은 하나도 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상황에 맞게 질문을 업데이트해야 하니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고작 한다는 질문이 이거였다.

"그럼 전 이제 뭘 해야 하죠?"


세 가지 방법을 얘기해 줬다.

1. 적극적으로 주기적인 추적관찰을 하면서 변화가 생기면 그때 다시 검사를 한다.

2. 총생검을 실시한다. 유방암 검사때 해봐서 한 번에 알아들었다. 세침보다 두꺼운 바늘로 조직을 많이 뜯어내서 검사하는 방법이다. 좀 더 정확도가 높다고 한다.

3. 수술을 한다. 일부 갑상선암은 세침검사나 조직검사로 알 수 없고 진단적 수술만을 통해 확인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 수술을 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 느낌이다. 남편과 나는 양성일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기에 크게 실망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크게 안도할 수도 없었다. 세침검사 단계만큼이나 애매한 상태로 병원 로비에서 의견을 모았다. 일단 조직 슬라이드를 신청했다. 유방암 follow up 하고 있는 대학병원으로 가져가 한번 더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일단 오늘은 넘어갔다. 산정특례 코드 하나 더 받는구나 각오하고 왔는데 우려했던 암진단을 받지 않았다.

'잠시 보류인가? 정말 아닐 수도 있는 건가? 희망회로를 돌려도 되는 걸까?' 설레발은 치지 않기로 했다.


초음파 검사상 5단계 고위험을 받은 날 이미 갑상선암 환자가 되어 '내 팔자야'를 외치며 이런저런 자문을 구했던 갑상선암 커뮤니티를 다른 주제로 뒤져보기 시작했다.

"3단계 나왔는데 저는 이제 뭘 해야 할까요?"

환우들은 세심하고 친절하다. 동병상련의 끝이다. 본인들의 사례를 들어 자세히 댓글을 달아준다.

보통은 3단계일 경우 좀 더 정밀한 총생검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재검에서 악성이 나와서 수술을 기다리는 사람, 다행히 2단계로 내려가 추적 관찰 중인 부러운 사람, 총생검에서 여전히 3단계로 나와 선제적 수술을 권유받는 사람등 다양했다. 애매한 결과에 조직검사를 반복하며 몇 년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앞으로 그 애매함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과정이 남아있다. 징글징글할 것으로 예상된다. 희망을 품었다가 좌절되었을 때 더 힘들어질 수 있으니 섣부른 희망을 품지 않는다. 성급한 절망도 하지 않는다.


일주일일만에 신청했던 조직 슬라이드를 받아 유방암 수술을 했던 대학병원에 제출했다. 또 기다림이다. 설날이 있어 기다림은 더욱 길어졌다. 3월 초에나 진료가 가능하다.

여기서는 어떤 판독을 할지, 아니면 다른 제안을 할지 두렵다. 혹시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 해도 처음처럼 주저앉아 울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잠깐의 희망이 나를 일으켜 세워 힘을 주고 있다.


응원하고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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