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밥을 먹을 수 있으면 충분해
오늘은 오랜만에 가족 4명이 완전체로 모이는 특별한 금요일이다. 불타는 금요일이라는 이 촌스러운 말을 아직도 쓰는지 모르겠지만 오늘을 나만의 불금으로 정했다.
아들이 첫 휴가를 나왔다. 군대에서 나오는 휴가는 아니고 기숙형 재수학원에서 보내주는 휴가다. 아들은 작년 황금돼지띠에 불수능을 본 고3이었다. 나름 열심히 했지만 본인이 원하는 학교에 합격하지 못했고 3순위 지망했던 학교는 합격했지만 등록을 포기했다. 붙은 대학을 가자고 했지만 더 큰 꿈이 있다나. 처음에 재수는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세상에 절대가 있던가. 특히 자식에게는 절대가 절대 없다. 그렇게 고 4가 되었다.
아들은 설날도 되기 전 기숙학원에 들어갔다. 설날 떡국이라도 먹고 들어가라 했지만 그 뜻이 완강했다. 어쩌면 설날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건네는 덕담이 대학 관련 이야기일 것 같아 그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들여보내고 했다. 그렇게 설날에도 보지 못했던 아들이 오늘 첫 휴가를 나왔다. 너무나 보고 싶었다. 내가 병원 다니며 근심 어린 표정 짓는 걸 보여주지 않을 수 있었으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
이 녀석의 다정함은 나의 슬픔을 잘도 찾아낸다
"엄마 무슨 일 있어요?" 내 표정만 보고도 가끔 이런 질문을 하는 아이니까 집에 있었다면 바로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아들이 촉이 좋거나 우리 부부 연기력이 부족하거나 둘 중 하나다.
현관에 들어서는 아들을 한걸음에 달려 나가 와락 안아주었다. 아들은 멋쩍은 웃음을 짓고 우리는 짐도 풀기 전에 궁금했던 질문들을 쏟아내었다. 뻔한 질문들. '밥은 잘 먹냐, 잠은 잘 자냐.'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지가 가장 궁금한 질문이고 그것이 성공적이라면 잘 지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조잘조잘 떠드는 아들이 있으니 집안에 활기가 돌았다. 어제 병원에서의 일들은 다 날아가고 근심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금요일이다.
"그간 집에는 뭐 별일 없었죠?"
"그럼, 그럼. 보고 싶은 거 말고는 별일 없었지."
기숙학원에 있는 아들에게는 당분간 비밀이다. 딸에게는 대충 설명을 했다. 수술을 하게 되면 어차피 알게 될 일이라 그때 가서 얘기하면 더 놀랄 것 같아 담백하게 팩트만 전달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얘기했는데 속아주는 척을 하는 것 같다.
딸도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해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온다. 난 딸을 칭찬할 때 이렇게 표현한다.
가진 능력도 뛰어나지만 그보다 더한 성실함을 가졌다고. 학생 때도 성인이 된 지금도 뭐든 알아서 잘해주었고 다정하고 예의 바른 모습에 늘 고마운 마음이다.
'공부만 잘하는 학생 말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 돼라' 했는데 그 말도 실천해 좋은 대학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방학 때도 연구실 인턴을 하느라 늘 바쁘지만 가족의 안부를 놓치지 않는 살가운 딸이다.
어느 날 딸에게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했었다.
"엄마 120살까지 살 거니까 딸이 엄마 용돈도 주고 잘 보살펴 줘야 해." 엄마 건강하게 오래 살 거야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근데, 엄마. 그때가 되면 나도 90살이 넘는데 가능할까?" 하하하. 한참을 크게 웃었다. 그러네. 내 딸도 나이를 먹는구나. 나만 늙어가는 줄 알았다. 내 딸은 그냥 마냥 어린 딸로 남아있는 줄 알았다.
딸과는 이런 농담 섞인 말을 비롯해 어떠한 주제로도 대화가 잘 통한다.
흩어져있던 가족이 모두 모여 식탁에 둘러앉으니 식탁이 꽉 찼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깔깔거리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지금, 이 순간이 불금이지 뭐. 불금이 따로 있나.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그 평범함이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것인지 새삼 느낀다. 오래도록 식탁이 꽉 차기를 바란다.
딸은 나를 닮아 예쁘고 아들은 나를 닮아 유머러스하고 남편은 나를 안 닮아 사랑스럽다. 남편이 내 성격이랑 똑같으면 쉽지 않았을 텐데 안 닮아서 참 다행이다. 모두 내 기준이니 반론은 안 받는다.
내가 어떠한 상황이 되든 내 편이 될 사람들, 진심으로 나를 위로하는 사람들, 든든한 지원군인 우리 가족이 있어 행복한 불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