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쓰기

작가데뷔 18일 차 브린이 생각

by 하늘 예쁨

"이쁜이 뭐 해?" 남들은 납득이 어렵겠지만 신랑은 나를 이쁜이라 부른다.

"집필 중!"

푸하하. 대답하고 멋쩍어서 크게 웃어버렸다. 사실 집필 중이라는 말보다 이쁜이가 더 웃긴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나 노트북 사주라, 작가가 노트북 좋은 거 하나쯤 있어야 되지 않겠어?" 작가라고 거들먹거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우리 집뿐이다.

"쓰던 거 있지 않아?"

"너무 크고 무거워. 갤럭시북 사줘. 생일 선물로."

올해는 이미 지났고 내년 생일까지 몇 개월 남아있는데 명분 없이 비싼 노트북을 사기가 민망해서 그냥 들이댄 말이다. 신랑은 내가 사겠다는 통보를 저렇게 하고 있다는 것쯤은 이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작가! 돈은 언제 버는 건데?" 공격이 들어왔다. 물론 농담 섞인 공격이었지만 이내 내 눈치를 살피며 따지기도 전에 "농담, 농담!"이라며 화장실로 쏙 들어가 버린다.

20년을 넘게 나와 함께 살아온 짝꿍은 눈치도 빠르고 생존본능도 탁월해졌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18일 된 브린이다.(브런치 어린이)

하루에도 수없이 들락날락 거리며 다른 작가들 글을 보기도 하고 라이킷이나 조회수 급등소식 알림을 울려주는 휴대폰 진동이 설레고 반갑다. 누군가 나를 구독이라도 해주면 괜한 자신감도 잠깐 상승한다. 사실 라이킷이라는 것이 꼭 좋지 않아도 인사치레로 누르는 것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조회수 급등은 운 좋게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려서 이루어진 결과물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운 좋음이 아무나 되는 건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고 글 쓰는 에너지로 꺼내서 쓰고 있으니 내막을 알고 있어도 말해주지 마시라. 그냥 그런 행복한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고 싶으니까. 아무튼 18일 동안 내가 쓴 글 3편이 다음 메인에 걸려서 조회수 10000회를 돌파했다는 알림도 몇 번 받았고 구독자도 아주 미미하게 증가하고 있는 중이다.




한 명의 관람객만 있어도 공연을 하는 무명배우처럼 내 글을 좋아해 주는 한 명의 구독자만 있다면 그냥 하고픈 말을 쓸 것이기에 구독자 숫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일단 몇 명은 분명한 애독자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아무래도 다 괜찮다.

누군가 마감 압박을 하는 것도 아니도(골프연재는 살짝 압박이 있긴 하지만 자발적 압박이니 괜찮다) 돈을 받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무엇을 쓸까 계속 고민하고 머릿속에는 늘 글감들이 떠다닌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작가서랍에 저장해 놓고 서랍을 열어 물건을 정리하듯 살을 붙여가며 무언가를 계속 쓰고 있다. 예전에 1인밴드를 만들어놓고 주인장 노릇하며 썼던 글,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에 쌓여 있는 많은 글들은 일기처럼 생각나는 대로 쓰고 퇴고 없이 방치했다. 어차피 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굳이 그때의 감정을 고칠 이유도 없었고 다시 보기보다는 쓰기에 집중했다. 그렇게 감정에 치우쳐 쓴 글들이 몇백 개는 된다. 한때는 긴 호흡의 글이 자신 없어서 한 줄에 임팩트를 강력하게 실어주는 시를 써보겠다고 끄적여 놓은 것도 100편이 넘는다. 살려볼 만한 게 있나 뒤져보는데 어릴 적 일기장을 다시 펼쳐본 것처럼 오그라들기가 아주 손바닥이 안 펴질 지경이다. 잘 뒤지면 쓸만한 거 한벌쯤 나올지 모르는 버려진 옷들 가득한 의류수거함 같은 내 글들은 심폐소생술이 필요해 보인다.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늘 그렇게 뭐라도 쓰고 있었다. 그래도 몇백 개의 글을 쉬지 않고 써왔음은 칭찬을 해줘야 할 것 같다. 비록 다시 보니 형편없이 어색할지언정 그 당시 진지함을 상상해 보면 무척이나 쏟아낸 글이긴 할 테니까 말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쓰는 것만큼이나 고치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는 것이다. 내가 쓴 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맞춤법을 교정하고 내용을 수정한다. 한 번에 걸리는 곳 없이 후루룩 읽히는 편한 글에 피식 한 번쯤은 웃을 수 있게 쓰고 싶기 때문이다. '발행!'이라는 버튼을 누를 때의 무게감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누군가가 보는 글을 쓴다는 것과 나만 보는 글을 쓰는 것의 가장 큰 차이 점은 이것이지 싶다. 한편으로는 쓰고 싶은 글이 아니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게 될까 봐 우려가 되기도 하지만 보여줘도 좋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그렇게 오늘도 뭐라도 쓴다.



♡ 눈 내린 아침 브린이 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