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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Feb 12. 2024

스물셋

나의 이야기

이름 있는 좋은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들처럼 훌륭한 스펙을 쌓지도 못했던 스물세 살 대학 졸업반이었던 저는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4학년이 되자마자 써보기 시작한 이력서에는 빈칸들 이 더 많았고, 민망하고 보잘것없던 토익 점수와 자격 증 몇 개로는 취직 자리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차가운 현실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다른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서울에 있는 더 좋은 학교를 가지 못한 제 처지가 한심했고, 여유롭고 마음 편하게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번번이 고배만 마시는 취업도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였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집안 사정도 견디기 힘들게 다가왔습니다.


그나마 돈을 들이지 않고 부족한 실력을 채울 수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현실을 회피할 수 있었던 방법은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도서관 로비에 줄지어 있던 신문 열람대에서 주요 일간지와 경제 신문을 시작으로 열람실에 있던 갖가지 소설책과 에세이, 자기 개발서, 전문서적 등을 읽으며 현실의 고민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할 만한 게 없어서, 뭘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찾아간 도서관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때의 시간이 저에게 삐뚤어지지 않은 가치관과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는 잘하지 못했어도 누구보다 책은 많이 읽었고 하루 종일 책만 읽어도 재미있고 즐거웠던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싸우거나 그 화풀이가 저에게 오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괴로웠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음악을 크게 틀어 놓은 다음; 좋아하는 소설책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책 속에 빠져들어 현실의 소음을 잊어버릴 수 있었어요. 덕분에 그 시간들을 잘 버틸 수 있었고 그때 만들어진 습관으로 지금도 책을 통해 위로를 받곤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도피처를 찾은 곳이 도서관이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조금씩 생각하는 힘이 만들어졌습니다.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 자기계발, 역사, 문화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다 보니 세상을 보다 더 넓은 시야로 볼 수 있었고 제 처지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여느 날처럼 도서관에 박혀 책을 읽고 있었는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계기를 만들어준 한 권의 책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독서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각들이 쌓여왔고 갑자기 깨달음이 오듯이 든 생각이었습니다.




변화를 원하면 내가 변해야 한다.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싶으면 지금을 바꿔야 한다.




구체적인 생각이 곧장 따라오지는 않았지만 변해야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습니다.

제가 속한 환경이 저를 위해 알아서 긍정적으로 변해주기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었기에 우선 제가 먼저 변하고자 했습니다. 제가 먼저 변해서 답보 상태인 현재의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변하고자 하는 마음은 먹었으나 어떻게 변화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살면서 주체적으로 결정을 하거나 스스로 이끄는 삶을 살아볼 기회가 없었기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런 방법을 생각하기에 겨우 스물세 살, 아직은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때 제 삶의 방향 전환에 큰 도움을 주신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갓 부임한 교수님은 삼십 대 후반의 젊으신 분이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시고 다른 연배가 있으신 교수님과 달리 권위주의 적인 모습도 없으셨죠. 방학 때는 학생들 대상으로 스터디 모임도 만드셔서 자격증 준비도 도와주시곤 하셨습니다. 저 역시 우연한 기회에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요. 취업도 안 되고 무언가는 하고 싶고 지금 처한 답답한 상황도 바꾸고 싶은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는 제 상황에 대해 토로하고 말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현재의 막막함을 불평처럼 늘어놓고 있는 저를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시던 교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사람의 능력은 종이 한 장 차이야"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고 겨우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다만 그 능력을 발휘함에 있어서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어떤 생각과 사고를 지녔는지에 따라서 능력이 두 배, 세 배로 발현되거나 아니면 능력이 묻히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불행한 상황에 정체되어 있지 않고, 지금 당장 방법은 모르겠지만 어떻게 해서 든 변화를 주고 싶다고 스스로 결심했다는 건 좋은 태도라고도 하셨어요. 그리고 어떻게 변화를 줄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시간을 들여 고민을 통해서 답을 찾아보라고도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정말 고민의 시간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변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다는 자체가 좋은 시작이라고 하셨으니 무엇이든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전 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학교 도서관으로 가서 더 많은 책을 읽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옮겨 쓰며 기록으로도 남겨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그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스스로와의 대화가 시작되었고, 이 대화를 통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찾기 위한 여정을 이어 나갔습니다.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변화의 시작점을 찾아서 한참 헤매고 있던 즈음 교수님께서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학벌이 평생 꼬리표로 달린 채 사회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으니 그 꼬리표를 한 번 바꿔보는 게 어떻게냐고 물어보셨습니다.

편입을 권하시는 걸까?라고 생각했지만 교수님은 미국 대학원 유학을 가보는 게 어떻겠냐는 더 큰 목표를 저에게 던져 주셨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미국 유학 제안에 어리둥절했지만 오히려 의외의 제안이 도전 의식을 갖게 하였고 이왕 변화를 시도해 보기로 하였으니 물리적인 환경과 심리적인 환경을 한꺼번에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변화의 시작점에 구체적인 목표가 생긴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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