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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뭐라고(2)

by try everything

"무슨 자신감으로 그래?"

"..."


숨차게 내뱉던 대화가 뚝 끊겼다.


'자신감?'

그런 건 없었다.

수학 학원 안 보낸 게 자신감 운운할 일인가?




주말을 맞이하는 금요일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회사에서 고의성이 다분한 상사의 부당한 업무 지시가 있던 터라 남편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것을 해내면 본인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나는 고작 마이쮸 하나로 벌어진 학급일 때문에 자괴감에 빠져 있었지만 6월 첫 주의 황금연휴를 생각하며 안 좋은 마음을 털어내는 중이었다. 직장 다니면서 이런 마음이야 흔해 빠지기에 남편과 집에서 찌개에 술 한잔 곁들이던 중이었다.



딸은 4학년이 되도록 공부 학원을 다닌 적은 없다. 영어도 학원을 다닌 적은 없지만 온라인으로 화상 영어를 하니 나름의 사교육을 받았다면 받은 셈이다. 그러나 단어를 줄줄 외우고, 시험을 보는 학습의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영어 잘하는 나이차 많은 '외국인 친구'를 얻은 느낌으로 영어를 배웠다. 영어 시간에 피아노 치는 아이 (brunch.co.kr) 공부의 양대산맥인 수학도 학원을 다닌 적이 없다. 1학년 때부터 코로나 시작이기도 했지만 초등학생 때 학원을 보낼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기에 평일에만 연산 문제집 1장, 교과 문제집 2장을 꾸준히 풀었다.


"엄마, 나 오늘 문제집 4장 풀래."

"안돼. 매일 3장씩 꾸준히만 해도 괜찮아. 다 했으면 놀아."


오히려 수학을 쉽고 즐거운 것으로 인식하고 매일 공부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다 남편이 어디선가 주워들은 사고력 수학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평화는 깨졌다.


"우리 부장님 아들이 알고 봤더니 연대를 갔더라고, 물어보니 계속 A학원에 다녔대. 그리고 OO은 초등학교 2학년인데도 영어랑 수학 학원을 주말에도 간대. 우리도 그런 거 시켜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 요즘 사고력 수학 학원 많이 다니긴 하더라. 그런데 벌써부터 다닐 필요가 있을까?"


우리 부부는 교육관이 달랐는지 이때부터 교육에 관한 한 삐걱 대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관심 있으면 나처럼 문제집 가지고 가르쳐 보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했다. 남편은 그 당시 교육열이 불타오를 때라 알겠노라고 했다. 아이는 갑자기 훅 들어온 아빠의 교육열에 맞추어 사고력 문제집을 푸느라 매일 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는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이야기 들어주는 일, 그리고 나와하던 수학의 양을 더 줄이는 일 밖에 없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울며 시작한 수학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울지 않고 풀기 시작했다. 그래도 삐걱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자기야, 이 문제집은 초등 1학년 과정을 이수한 1, 2학년이 푸는 문제래. 아직 1학년 것 다 안 배웠잖아. 그리고 내 생각엔 하루에 푸는 문제 양이 너무 많지 않아? 그리고 주말까지 풀라고 하면 나라도 하기 싫겠다."

"... 그럼 나 이제 안 가르친다. 알아서 해."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지라 가르치지 말라고 큰소리치고 싶었지만, 분량과 난이도만 조절한다면 나쁠 것이 없는지라 단박에 거절도 못했다. 게다가 나중에 수학을 못하면 내 책임이라고 떠넘길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아니, 분량만 좀 조절하라고."

"..."



3학년인 어느 날부터는 한참을 이런 식으로 지내다가 아이와 부모 모두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의 수학 공부에 관심이 줄며 가족의 평화가 일시적으로 찾아오는 듯했다. 다행히도 아이는 학교 수업시간에 집중을 잘했는지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대뜸 잠잠하던 화산이 폭발하듯이, 그동안 무신경했던 수학에 대한 걱정과 조바심이 한데 엉켜 제대로 터졌다. 예전에는 설명하고 문제 푸는 것 봐주고 채점까지 해주었는데 점점 채점도 스스로 하고 알아서 풀라며 신경도 안 썼으니 나도 할 말 없으나 남편도 다를 바 없으면서 자신감 타령을 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감까지는 아니더라도,

1. 올해 우리 반 아이들 중 수학 수업 시간에 제일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는 학원 안 다니는 아이들이다. 성적과는 무관하다는 점이 있지만 태도가 좋다. 그리고 이대로 공부하면 잘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물론 복 받았다. 따로 공부를 하지 않고, 공부 시간에도 집중 안 하는 친구들도 많다.)
2. 나도 학원을 안 다녔지만 나름 공부를 했다.
3. 학원 다닌다고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는 내용이라고 학교 수업 시간에 딴짓하고, 학원 가서도 못 버티는 경우도 많다.
4. 요즘 나태해지긴 했지만 다시 잘하면 된다.


이런 이유로 지금이라도 우리가 봐주기 힘드니 학원을 보내자는 남편에게 반박을 했다. 그러나 남편도 물러서지 않아 합의점으로 2학기에 학원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럼 자기가 생각하는 학원 2개, 내가 생각하는 학원 2개 골라서 알아보자."


학교에서는 '더 잘하고 싶어서 학원 다니는 것은 찬성이지만 못 한다고 학원에 다니지는 마.'라며 학교 수업 시간에 집중하면 못 할리 없다는 것을 강조해 놓고서는 내 자녀는 학원을 보내기로 타협을 했으니 마음이 찜찜했다. 아이도 웬 날벼락이라는 표정으로 이제부터 수학 공부를 밀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남편에게 상한 마음 때문에 아이의 마음까지 돌보기 어려웠다.




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우리 반 아이가 매주 방과 후에 꾸준히 공부하고 단원 평가 본다고 점심시간까지 할애해서 공부한 덕에 단원평가에서 첫 90점을 맞았다. 이보다 기쁠 수 없었다. 남편에게 보란 듯이


"봐 봐. 학원 안 다녀도 열심히 하면 되잖아."

라며 자랑할 수밖에. 수학이 뭐라고(1) (brunch.co.kr)



화산 폭발이 멈추고 조용해지니 남편의 마음이 보였다.

직장일로 아이를 봐주기 어려워지고, 아이가 나중에 공부할 때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는 마음으로 그랬다는 것을. 못해서가 아니라 더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도 최근 조금씩 학원을 알아보니 내가 너무 우물 안 개구리였나 싶기도 했다. 요즘은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만들어진 영재'라는 말이 있듯이 키워줘야 할 때 방관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눈이 뿅 돌아갈 만큼 좋은 교육과정과 신념으로 가르치는 곳도 많았다.



부모는 의견 충돌이라 하고, 아이는 엄마 아빠가 싸웠다고 평한 그날 이후 아이는 스스로 문제집을 잘 풀기 시작했고, 우리 부부도 다시 애정 어린 관심으로 공부를 봐주기 시작했다. 학원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언제 다시 터질 줄 모르는 휴화산이긴 하지만 말이다.





[옛날 옛적 말씀]
성공의 3요소: 조부모의 재력 + 아빠의 무관심 + 엄마의 정보력


3개다 애매한 이 상황 어쩔 것인가.

수학이 뭐라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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