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작가 된다'의 저자는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다 보니 선생님이란 호칭이 입에 '착' 달라붙어 한동안 상대방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의 친구인 편집자 L은 완벽한 철자와 문법에 예민한 직업병을 가졌다고 한다.
드라마 속 교사는 남을 가르치려 하거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도 박수를 치며 집중을 유도하는 사람으로 묘사되곤 한다. 다소 과장되긴 했어도 교사의 직업병 중 하나일 것이다. 전직 초등교사로 다수의 책을 낸 이은경 작가님은 몇년 동안 해온 "얘들아"소리 때문인지 강연에서도 엄마들에게 '얘들아'라고 부르는 귀여운 말실수를 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강연 후 그 소모임 이름은 '얘들아'가 되었다.
이렇듯 다양한 직업병이 있겠지만 내겐 안전예민증 직업병이 있다.
유아에서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다소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뭔가 바로 잡아줘야 할 것 같고 위험한 상황을 빨리 제거하여 안전하고 평화로운 상태로 만들고 싶다. 우리 반 교실에서는 목소리로, 또는 종을 쳐서 그 행동을 멈추게 한다. 내 목소리가 하늘로 퍼지며 날아가는 운동장에서는 호루라기가 효과 만점이다.
그러나 학교 밖의 나는 그냥 지나가는 아줌마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참견하는 순간 때론 이상한 아줌마가 되거나 내 아이 꾸중하는 못돼 처먹은 아줌마가 될 수도 있다.
그냥 내가 상상하는 일이 벌어지질 않길 바라며 기도하는 수밖에. 때론 "얘들아, 위험해."라고 작은 목소리로 훈수를 두는 행인 1 정도의 역할만을 한다.
퇴근하며 아파트 단지에 진입하는데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아이들이 '욕 대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아니다. 아이들은 즐거운 대화 중이었겠지만 씨*, 존*, 개**와 같은 그들의 언어가 내게만 힘겨웠는지도 모르겠다. 근무하는 학교라면 당장 "고운 말 쓰세요."라고 대화에 끼어드는 선생님 1이 되겠지만 여기는 내 구역이 아닌지라 눈과 귀를 닫고서는 총총총 걷는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에 유치원생인 딸과 친구들이 대형 슬라이드가 있는 물놀이장에 간 적이 있었다. 유아와 초등이상의 아이들이 구분되지 않고 노는 터라 내 아이를 포함한 어린아이들이 다칠까 봐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에어바운스 슬라이드에 5-6학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서로를 올라가지 못하게 끌어당기고 난리였다. 바로 옆에 '차례차례 줄 서기'라고 쓰여있는 글은 보지 못했나 보다. 근처에 자녀의 위험한 행동을 제지할 수 있는 부모가 있는지 두리번거려보지만 없는 것 같았다.
'호루라기 가져올 걸.'
학교 서랍에 넣어 둔 호루라기 생각이 간절했다. 안전요원인척 위험할 때 몰래 "삐-"하고 주의를 주고 싶을 정도니 놀러 왔는데도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불안했다. 결국 아무도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곳에서 나만 마음이 불편하여 아이들을 그곳에서 빼내어 자리를 떴다. 그 이후 그곳에서 장난치던 아이들은 다쳤는지 절뚝이며 그곳을 빠져나갔다.
최근 동네에 캠핑장 콘셉트의 실내 푸드코트가 개점을 하였다. 실제 개울도 흐르고, 금붕어도 살고 있어 아이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개점 초기라 워낙 인기가 많아 자리가 없어 징검다리 옆 사람의 이동이 잦은 곳에 겨우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 옆에는 3-4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혼자 개울가에 서서 돌을 금붕어한테 던지고 있었다. 깊지는 않지만 어린아이이다 보니 빠질까 걱정이 되어 또다시 주변에 부모가 있나 찾아보지만 밥 먹는 것만 열중할 뿐 이곳을 주시하는 어른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다칠까 걱정도 되고 생명에게 돌을 던지니 그것도 보기 힘들어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가 위험해질까봐 부모가 데리러 올 때까지 시선은 계속 그곳에 둘 수밖에 없었다.
이 놈의 직업병 덕분에 학교 안팎에서 신경이 곤두설 때가 많다. 아무리 주의를 주고 유심히 지켜봐도 다치는 건 한순간이고 평화가 깨지는 건 찰나이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알지 않는가. 안전한 상황을 계속 유지시키고 싶은 나의 바람이 이런 직업병을 가져온 듯 싶다.
오늘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1년을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주머니 속 호루라기를 부적처럼 만져본다. 소리 날 일 없는 호루라기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