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 가본다. 혼자 오렌지를 먹을 만큼 얌체 같은 남편은 아니지만 혹시나 하여 오렌지를 먹었나 살펴본다. 역시 아니다. 반짝반짝 깨끗한 주방은 아니지만 오렌지 먹은 흔적은 없다.
딸아이 방에 가본다. 내가 잊고 있던 핸드크림을 발견하고 신나게 바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시 아니다.
도대체 이 오렌지 향은 무엇일까?
그때 다시 코끝을 스친다. 남편이 지나간 자리에 향기가 남았다. 남편의 등이 보인다. 낯선 이 향기가 내 남자에게서 풍긴다. 뭐지? 남편에게서 오렌지향이라니.
무슨 일이 생긴 거니?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남편 등 뒤에 다가가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남편은 뭐 하는 건가 나를 쳐다본다. 눈이 마주친 순간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다.
"오늘 안방 화장실에서 씻었어?"
"어."
"왜?"
"아까 거실 화장실 쓰고 있길래."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안방 화장실에 들어가 갈색 병을 들고 나오며 물었다.
"혹시 이걸로 샤워했어?"
"어."
"...... 이거 홈드라이 세제야."
"......"
진하게 오렌지향을 풍기던 녀석은 바로 홈드라이 세제였다. 알듯 말듯 풍기던 향기의 범인이다. 남편이 샤워하고 나와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이곳저곳 퍼뜨린 향기.
남편은 주로 거실 화장실을, 나는 안방 화장실을 쓰고 청소를 각자 한다. 금지구역도 아니고 규칙으로 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서로 편한 방식으로 쓰고 있었다. 그러다 딸아이가 샤워를 하느라 남편이 안방 화장실을 썼고, 바닥에 놓인 것이 새로운 바디워시인 줄 알고 온몸을 구석구석 씻은 것이다. 향도 좋다며.
남편은 나의 말에 바로 화장실로 직행하여 다시 샤워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오렌지향은 남았다. 남편은 자기가 세탁세제로 몸을 씻었다는 사실이 어이없다. 나는 병에 큼지막하게 쓰인 글씨도 안 보고 쓴 남편이 어이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