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반을 모두 소진하고 주어진 추가시간 1분이 지날 쯤 황희찬의 공이 네트를 갈랐다. 옆에서 '나 혼자 산다'에 나왔던 그 황희찬 맞지 하고 딸이 아는 체를 한다.
열렬히 응원해마지 않던 2002년 월드컵 레퍼토리가 지겨워질 때쯤(사실 하나도 안 지겹다) 또다시 20년은 우려먹을 수 있는 2022년의 대 역전극 장면이 눈앞에 벌어졌다.
경기 시작 전에는 16강 진출을 가능케 하는 경우의 수가 총출동했다. 머리가 아프다. 사도 사도 입을 옷이 매일 없는 옷장의 마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상의와 하의로 코디할 수 있는 옷의 종류를 따져볼 때만 쓰던 필살기가 경우의 수 아닌가. (딸아, 수학이 쓸모없어 보이고 왜 배워야 하는지 궁금하거든 네가 열광한 월드컵에서도 쓰인다는 것을 명심하고 수학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기를 바란다.)
난데없는 경우의 수 출현에 수학의 유용성이라는 어이없는 생각에 빠져들 때쯤 경우의 수고 뭐고 일단은 우리가 포르투갈을 이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는 우리의 역량 밖의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대표팀은 포르투갈과 경기를 하고, 나는 응원을 해야 한다.
한국과 포르투갈 경기 몇 분 전까지 글쓰기 모임 특강이 있었다. 우리를 울고 웃기고, 머리채 잡아끌며 무조건 글을 쓰세요 하는 선생님의 마지막 특강 덕분에 투지에 불타 올랐다. 아마 대표팀 유니폼 입히고 경기에 들여보냈으면 골 하나는 넣고 나오지 않았을까.
항상 무언가는 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이유 99가지를 대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덫에 걸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때론 시작은 해도 정리도 빨랐다. 1년 전 브런치 작가가 될 때만 해도 진짜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며 글을 썼다. 3편. 우습다. 하지만 더 이상 써지지 않는 글과 게으름, 오르지 않는 조회수로 금세 흥미를 잃었다. 그때는 조회수, 구독자수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나의 의지로 변화시킬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이었다. 만약 그때부터 꾸준히 일주일에 1편이라도 글을 썼으면 지금쯤 50편의 글을 썼을 텐데. 이 단순한 진리를 이제야 깨달았다니 꽤나 놀랍지만 이제라도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보려 한다. 지금도 누군가가 라이킷했다는 알림을 보면 순간 심쿵하는 것은 아직 수련 부족이겠지마는 남의 시선이나 판단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내 할 일을 하면 좋겠다는 바람은 진심이다.
조회수, 구독자수, 팔로워 수, 주가, 대출금리, 로또, 아파트 시세, 연봉, 직장 상사, 기타 등등 백만 스물두 가지 것들아, 안녕.
내가 바꿀 수 없는 너희에 대한 고민과 한탄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 쏘니가 경우의 수고 뭐고 마스크 쓰고 열심히 축구한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그치만 하나님, 혹시나 기분 좋으시면 조회수, 구독자수, 연봉 팍팍 올려주셔도 전 상관없어요. 편하실 대로 하세요.
I can't change the direction of the wind, but I can adjust my sails to always reach my destionation. -Jimmy Dean
내가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나라는 배의 돛을 조정해서 원하는 목적지로는 갈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