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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9988234

by try everything

'나도 팔리는 작가가 되고 싶다'를 쓴 이주윤에 따르면 요즘 열광하는 여성 작가라 하면 임경선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나 이 작가 아는데, '요조랑 책 쓴 사람 아니야?' 하며 검색해보니 맞다. 아직 쓸만한 기억력을 가졌다 생각하며 으쓱한다. 밀리의 서재에 임경선 작가를 검색해보니 예상외의 책 제목이 나온다. 평범한 결혼생활. 결혼을 안 했을 것 같은데 결혼을 했음에 놀라면서 돈 드는 거 아니니 읽어보기 시작한다.

아이코, 아이도 있구나. 뭔가 신식 여성 같은 느낌인데 평범한 가정을 꾸렸음에 또 한 번 놀라며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겨본다(편견과 선입견을 가진 나 반성합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이렇게 문장을 쓰는구나 하며 술술 읽어나간다.


하루는 그와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중략)
"아무 걱정 하지 마라. 네가 늙어서 아프면 내가 다 간병해줄 테니까. 너 가는 길 힘들지 않게 해줄테니까."
진지한 말투로 보아, 그는 내가 먼저 가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것 같았다. 아무리 내가 지병도 있고 평소 여기저기 골골하지만 여섯 살이나 많은 사람이 이토록 자연스럽게 단정 지어버리면, '처연한 과부'가 은은한 장래 희망 중 하나인 나는 몹시 곤란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그런 다짐을 한 게 은근 뿌듯하고 대견한가 보다.

임경선 '평범한 결혼생활'


나도 평소 여기저기 골골한데 똑같네. 인기 있는 작가님과 비슷한 구석이 하나라도 있음에 괜히 기쁘다. 게다가 남편이 다 간병해준다고 하니 얼마나 든든할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처연한 과부'가 될 수 없음에 곤란하다고 쓰는 작가의 필력. 너무 멋진 거 아냐? 그리고 궁금해졌다. 남편은 뭐라고 말할까?


평소에 임경선처럼 골골대기에 가끔씩 이렇게 말하곤 했다. 무엇을 바라고 했다기보다는 내가 더 일찍 세상을 떠날 것 같아서 나의 사후 로망(?)을 읊어준다.


나는 수목장을 해줬으면 좋겠어. 나무도 좋아하고, 산소를 만들면 벌초하기 힘들잖아. 그런 고생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아. 화장은 아무 상관없어. 죽으면 못 느낄 테니 화장해서 자주 올 수 있는 곳에 수목장으로 해줘. 꼭 기억해.
그리고 혹시 장기기증을 할 수 있으면 해 줘. 이것도 난 어차피 못 느낄 테니깐. 아니다. 그래도 내가 온전한 모습이 아니게 되면 가족이 너무 슬프려나? 이건 좀 고민해볼게.


forest-1072828_1280.jpg


이런 식이다. 내가 먼저 죽더라도 간호를 부탁하는 계획은 없었다. 그냥 장례식의 한 방법을 알려준 거랄까?

남편은 매번 그냥 흘려듣는지 새겨듣는지 대꾸가 없었다.


이러다 보니 남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뭐라고 질문해야 할지 생각도 안한채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는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야, 자기는 내가 먼저 죽었으면 좋겠어? 아니면 자기가 먼저 죽었으면 죽겠어?

...

"아니다. 내 말은 자기가 먼저 죽을 거 같아? 아니면 내가 먼저 죽을 거 같아?"

...


질문이 이상하다. 결국 내가 임경선 작가의 책을 읽었는데 작가의 남편은 이렇게 말했대. 길게 부연설명을 하고서 '자기는?' 하고 물었더니 하는 소리가 가관이다.


"음. 나는 자기가 나 아프면 간호해줬으면 좋겠어."


예상치 못한 답변이다. 내가 병간호를 해줬으면 좋겠다니. 작가님 남편은 걱정 말라며 자기가 다 알아서 해준댔는데 뭔가 억울하다.

뭔가 듬직하고 의지되는 남편의 모습을 기대했는데 아니었다는 실망감에 엉뚱한 대답만 늘어놓는다.


"나는 내가 먼저 죽을 줄 알았는데 자기는 아니었구나."





작전을 변경해야겠다.

9988234.


우리는 서로 간호할 일 없이 죽을 때까지 건강하기로.

아니면 혹여 아프더라도 툴툴 거리는 거 없이 애틋한 마음으로 잘 간호해 줄 수 있게 미워하지 말고 잘 살아보기로.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틀 앓고 3일째 죽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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