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한다. 사실 40이 아니다. 내일모레 40이다. 아직은 30대라고 우길 수 있으나 뭔가 착 감기는 제목을 위해 나이 뻥튀기 좀 했다. 나이를 줄인 것은 아니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바라본다.
지난주 화, 목요일 이틀간 내린 눈으로 아직도 온 세상이 하얗다. 요일을 기억하는 이유는 테니스 레슨 가는날이어서다. 얼마나 힘겹게 테니스장을 갔는지 지금 생각해도 고생, 고생, 쌩고생이다. 눈이 가로로 내리니 우산을 써도 소용없고, 우산을 안 쓰자니 바람이 매서워서 바람막이로 썼다.
내릴 때는 고생인데 어둠이 내려앉은 아파트 전경을 바라보니 하얗게 빛나는 것이 고요하면서 참 아름답다.
다음날, 이 고요함을 깨는 것은 아이들이다. 눈오리로 시작한 눈 집게가 공룡, 하트, 똥, 산타 갖가지 모양으로 만들어지면서 눈 속 풍경이 다채로워졌다. 아직도 눈 집게가 하나도 없어 쿠팡을 뒤적여보지만 로켓배송이 안 되는 제품이라 장바구니에만 담아놓고 결제를 미룬다. 혹시 집 앞 다이소에서 살 수도 있으니 하루만 더 담아놓기로 한다. 아이들은 눈싸움도 한창이다. 부모들은 눈썰매에 아이를 태워 아파트 단지를 돈다.
'나도 주말에 눈썰매 타야지.'
눈썰매 태워줘야지가 아니라 눈썰매 타야지다. 또 이실직고하자면 난 눈썰매가 좋다. 너무너무 좋다.(튜브 썰매랑 슬로프에 다른 사람들이랑 섞이는 썰매는 안 좋아한다. 자세히 말하면 길기에 나만의 눈썰매 철학이 있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작년에 동네 비탈길에서 타다가 속도를 못이겨 붕 떠올라 낙엽더미에 처박힌 적이 있다. 잘못하면 크게 다칠뻔한 상황이기도 하고 온몸에 낙엽이 덕지덕지 붙었는데도 벌떡 일어나 깔깔댔다. 재밌어서. 그리고 눈썰매 타기에 좋은 곳이 보이면 꼭 기억해두고 찾아가 본다. 이렇다 보니 눈썰매도 2개다. 딸 거랑 내 거. 차례차례 타기에는 엄마의 인내심이 약하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몇 개의 동네 공짜 눈썰매 스폿을 보유한 나도 이사를 오니 맥을 못 춘다. 새로 시작해야 한다. 제일 만만한 게 아파트 단지인데 오며 가며 괜찮다 싶은 곳이 있긴 했지만 실제로 타봐야 진가를 알 수 있으니 시간이 제법 걸리는 일이다. 게다가 이사한다고 눈썰매 1개는 아는 동생한테 주고 왔다. 딸이랑 차례차례 타야 한다. 아니면 둘이 한 번에 타던가.
그러던 와중 어제 기가 막힌 곳을 발견했다. 대출한 책이 연체되었다는 문자에 부랴부랴 도서관에 가는데 어디선가 '꺄아'하는 소리가 들린다. 위급한 소리가 아니라 즐거움의 소리다.
어딘지 살펴보니 공원 옆으로 높고, 길이가 꽤 긴 경사로가 보였다. 춥다는 남편에게 잘 됐다며 책 반납을 부탁하고 올라가 본다. 평소에 차가 다니는 것을 보긴 했지만 길 끝은 철조망으로 막혀있고, 제설도 안 해서 당분간 차가 다닐 일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실제 타는 사람들이 너무 즐거워 보인다.
찾았다. 우리 동네 눈썰매장.
설레는 마음으로 뽀로로가 그려진 파란색 눈썰매를 끌고 왔다. 실제로 제일 높은 곳에 서보니 사설 눈썰매장도 부럽지 않다. 높이며, 길이며, 살짝 휘어진 코스까지 완벽하다. 첫 개시는 딸과 함께 탄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다.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한 30번은 탔을까, 이젠 브레이크를 잡느라 다리에 힘을 줘서 그런지 허리가 아프다. 허리만 안 아프면 더 타고 싶었지만 배고프기도 하니 그만 타기로 했다. 아쉽다. 다음에는 밥 많이 먹고 와야지.
돌아가는 길에 딸이 말한다.
"엄마가 눈썰매 좋아해서 좋아. 9살 같아."
"응. 엄마도 엄마가 눈썰매 좋아해서 좋아. 너랑 같이 타고 즐거웠어. 다음에도 또 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