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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Aug 11. 2023

오늘은 뒹굴뒹굴할래요.

제주도 여행이지만 어차피 계획이 없었으니 괜찮아.

어제는 제주도 오느라 날린 날이니 진짜 제주 여행은 오늘부터다. 어렵게 왔고, 표선만 3번째 방문이니 알찬 계획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열흘간의 제주 여행에서 계획한 것은 한라산 소주공장 방문, 레츠런파크 물총놀이, 골린이의 골프장 체험, 물놀이라면 J들은 기함하고, P라면 빡빡하다고 하려나?


솔직히는 뒹굴뒹굴하며 책 읽다가 밀린 글 좀 쓰고 싶다만 제주까지 가서 그럴 일이냐라고 할까 봐 중간중간 제주 여행스러운 계획을 넣어본 것이 위와 같다. 동네 도서관이 아니라 표선 도서관 책을 빌려 읽고, 동네 카페가 아니라 바닷가뷰 카페에서 글을 쓰면 제주 여행으로 꽤 괜찮지 않을까? 우리의 이런 무계획 속에 중간에 합류하는 지인들과의 만남도 있으니 분명 즐거울 것이라 확신한다.


어제의 쌩난리 '제주도 오기 대작전'이 그래도 행운이었던 것은 아마 태풍 '카눈'을 용케 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착했을 때 바람이 심상치 않아 잔뜩 긴장하고 일정도 무리하게 잡지 않았다. 오늘의 일정은 열흘의 제주살이를 위한 식량 보급 및 각종 장보기와 도서관에서 책 빌려오기면 족하다. 태풍이 오지 않아도 폭우를 만나는 경우가 많은 제주도이기에 태풍 예보가 있는 이곳에서 드라이브는 오늘만큼은 넣어두기로 했다.



그러나 태풍이 와도 끼니를 거를 순 없으니 근처 맛집을 찾아본다. '또간집'이라고 챙겨보진 않지만 말은 들어봤던 프로그램에 나왔던 식당이 근처에 있다. '표선 우동가게'라는 정직한 이름을 지닌 가게는 지나가다 봤던 기억이 있는데 방송을 탔다 하니 더 가고 싶어 진다. 간발의 차이로 다행히 마지막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해본다. 딸도 배가 고팠는지 메뉴를 순식간에 고른다. 오픈형 주방에서 풍기는 청결의 자부심과 맛이 어우러져 만족할만한 식사가 되었다.


다음 우리의 주요 일정은 식량 보급 및 장보기다.

날씨도 이러하니 저녁 메뉴는 파전이다. 여행 계획은 없는데 여행 첫날 저녁 메뉴는 정해놓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다소 웃기긴 하지만 비 오는 날은 파전이다. 남는 게 시간인 이 날 파전 재료와 한라산 소주, 막걸리를 신중히 고른다. 제주도에 왔으니 귤도 장바구니 담아 본다. 제주 여행의 플렉스는 뭐니 뭐니 해도 삼다수다. 육지에서 챙겨 온 커다란 장바구니에 넣어 장보기를 마친다.


각종 생필품은 다이소가 제격이다. 어젯밤 에어컨 리모컨이 작동하지 않아 건전지도 사고, 딸아이 렌즈 세척액도 구입한다. 괜히 필요 없어 보이는 물건도 몇 개 더 담아 장보기를 마친다.


점점 빗방울이 거세지니 얼른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자 한다. 작년에도 있었나 싶은 공사 현장이 도서관 앞에 펼쳐진다. 표선 문화체육복합센터라고 공연장에 수영장까지 들어온다 하니 내년이 더욱 기대된다. 이곳 땅값이 점점 오르겠다는 세속적인 생각을 하며 익숙하게 도서관에 들어섰다. 아마도 한 달 살기를 하러 온 사람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고 있다. 새로 들어온 책 코너에 꽂혀있던 책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와 '80년대생 학부모 당신은 누구십니까'를 집었다.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을 거의 만화책 보듯 깔깔 거리며 읽었기에 같은 작가의 책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읽어보기 충분하다. 그런데 제목 또한 심상치 않으니 더더욱 빨리 읽어보고 싶다. 딸도 한아름 책을 골라와서는 내 대출증의 대출 권수까지 탐을 낸다. 나도 더 읽고 싶은 책이 많지만 좋은 엄마 흉내를 내기 위해 딸에게 양보를 한다. 남편에게는 이은경 작가님의 책을 추천해 주고는 집으로 향한다.


그 흔한 카페도 가지 않고 보통의 날을 굳이 제주도까지 와서 하고 있다. 태풍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는 것도 여행이기에 과감히 하루를 할애한다. 이렇게 여유로운 하루도 은근히 빡빡해서 여행 기록을 밀리고 있으니 게으른 건가 싶기도 하지만 김혼비가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했으니 어쩔 수없이 최선을 다하지 않아야겠다.



맞다. 파전은 먹어야지. 오늘의 유일한 계획인데. 이건 최선을 다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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