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ry everything Aug 27. 2023

나는 네가 말한 공약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다.

2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벌써 개학한 지 3일째다. 벌써라고 하기엔 체력은 이미 개학 2주쯤 지난 것 같은데 아무튼 3일째다.  2학기 학급임원 선거가 1교시에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은 고요하면서도 약간은 들떠있다.


"너 이번에 선거 나갈 거야?"

"몰라. 생각 중이야."


누군가의 마음속에는 2학기에는 꼭 임원이 되어야지, 라거나 누가 나를 추천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임원이라면 절대 안 하겠다고 손사래 치는 학생도 있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하며 그날의 분위기를 탐색한다.


조용히 투표용지를 자르며, 컴퓨터 화면 속 학급 임원 선출 계획서를 다시 한번 숙지한다. 학교마다, 해마다 다르기에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본다. 학급임원 선거는 아니더라도 최근 전교임원선거 한 번 치를 때마다 각종 민원으로 몸살을 앓는 담당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신이 바짝 차려진다.






"지금부터 2학기 학급 임원 선거를 시작하겠습니다. 후보자는 본인을 제외한 3인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동의는 한 번만 할 수 있습니다. 회장 선거에서 탈락한 학생은 부회장 선거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학창 시절의 마지막 임원 선거입니다. 인기투표가 아니라 우리 반을 위해 봉사하고 친구들에게 배려하며 모범이 되는 멋진 임원을 뽑도록 합시다. "


간단한 규칙을 말한 뒤 바로 회장 후보 추천을 받는다.


"저는 J를 추천합니다. 왜냐하면, 1학기 동안 욕도 하지 않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리더십이 있기 때문입니다."


추천을 받은 J는 의외라는 듯이 순간 얼굴이 빨개지더니 놀랍다는 얼굴이다. 그러나 추천과 동시에 동의를 해주는 친구들을 보며 용기를 얻었을까? 반응과는 달리 빼지 않는다. 소견 발표를 준비하려는지 급하게 종이를 꺼낸다.


"저는 저를 추천합니다. 저는 임원 선거에 많이 나갔지만 한 번도 임원이 되지 못했습니다. 6학년 마지막에는 꼭 임원이 되고 싶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추천하는 아이들도 있다. 에너지가 넘치는 우리 반이 의외로 2학기 전교 임원선거에 한 명도 입후보하지 않아 의외였던 터라 학급 임원 선거에 열심히 참여하는 아이들을 보니 새삼스럽다. 6학년이라고, 사춘기라고 임원 선거에도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싶다.


총 4명의 후보들이 차례로 나와 소견 발표를 한다. 급하게 준비한 친구도 있고, 미리 준비한 친구도 있다. 투표용지를 나눠주며, 다시 한번 당부한다.


"인기투표가 아닙니다. 후보들의 공약을 잘 생각해서 우리 반의 회장이 되면 좋을 친구의 이름을 정자로 써서 이곳에 넣어주세요."


1학기 임원이 개표 위원이 되어 개표를 시작한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후보자들도, 후보를 선택한 친구들도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박빙이 될 때는 한일 월드컵 못지않은 긴장감이 돈다.


"5표 남았습니다."


1학기 회장의 쫄깃쫄깃한 개표 방송에 나도 귀를 쫑긋하게 된다. 3표가 남으니 당선이 확실시된다. 한 아이는 활짝 웃고, 나머지 아이들은 아쉽다. 그래도 끝까지 결과에 집중한다. 저학년인 경우는 떨어지면 우는 경우도 있는데 6학년이라 컸는지, 마음을 감출 줄 알게 되었는지, 부회장으로 재도전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렸는지 우는 아이는 없다. 그래도 탈락한 이에게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회장에 당선된 OOO 축하합니다. 그리고 아쉽게 탈락한 세 후보도 최선을 다하고 용기를 낸 점에서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회장 선거에서 탈락한 아이들이 재도전하고 부회장을 목표로 한 친구들이 더해져 남자 부회장은 6명의 후보가, 여자 부회장은 3명의 후보가 올랐다. 얼핏 보면 6학년이 아니라 저학년 같다. 저학년일수록 후보자가 많아 작년에는 후보자만 10명인 경우도 있었다. 후보자가 많으니 학생들에게 공약을 잘 기억하라고 하며 소견 발표를 시작한다. 아이들 대부분이 조용히 듣고 있는데 그중 한 아이가 눈에 띈다. 조용히 옆으로 다가가 힐끗 보니 예상한 대로 친구들의 공약을 꼼꼼히 적고 있다. 선생님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부끄러운지 손으로 잠시 가렸다가 보여준다. 계속 적을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 준다.


이번에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개표가 끝났다. 참여한 모든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수고했다 말하고 당선된 세 친구들을 앞으로 부른다.


"2학기 학급 임원이 된 친구들입니다. 친구들에게 인사. (아이들이 박수로 환호한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나요? 아까 S친구가 소견 발표를 들으며 모든 친구들의 공약을 적었어요. 당선된 친구들의 공약도 모두 기록이 되어 있으니 공약을 꼭 지켜주세요. "



이 말을 듣자마자 당선된 학생들이 놀란다. 1학기 회장이 남아서 10분간 청소하겠다는 공약을 스스로 지킨 것을 보아온 터라 2학기 임원도 일단은 결의에 찬 표정이다. 지킬지는 미지수지만 당선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공약이 아닌 진심의 공약이었길 바라본다.




이렇게 2학기의 포문을 연다. 새로운 임원도 뽑히고, 진짜 2학기가 시작되었음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