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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Aug 22. 2023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방학숙제 다했니?

선생님이 미칠 때쯤 방학을 하고, 엄마가 미칠 때쯤 개학을 한다.


그럼 교사이자 학부모인 나는 1년 중에 반이상은 미쳐있겠구나 싶다.




8월 초가 지나자 주변 지인들의 하소연이 쉴 새 없다.


"애들이랑 하루 종일 붙어있으니 하고 싶은 일을 못해요."

"밥 차리다 보면 하루가 다 가요."

"개학날만 기다리고 있어요."

"빨리 개학했으면 좋겠어요."


나도 학부모인지라 딸의 삼시 세 끼를 준비하고 계속 함께하는 것이 힘들 때가 있어 얼른 개학을 해야지 하다가도, 아차차하며 도로 말을 주워 담는다.


'안 돼. 차라리 방학이 낫지.'


한 명 보는 게 낫지 30명은 심란하다. 게다가 이제 맞이할 아이들은 2학기를 맞이한 6학년 아이들이니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기에 최대한 개학을 늦추고 싶은 마음뿐이다.


올해는 개학을 하면 방학 중에 학원에서 일어난 일로 학교폭력에 신고된 아이도 살펴봐야 하고, 방학 중에 sns에서 학급 친구 비방글을 올렸던 아이와도 이야기를 해야 한다. 2학기 시작 준비가 아니라 방학 때 일어난 학교 밖 일을 처리해야 하는 답답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개학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개학 1주일 전에 학급 밴드에 개학일과 주간학습안내를 비롯하여 방학숙제를 검사하겠노라 공지글을 올리니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숙제를 어디다 해요?(방학식날 설명했단다.)

숙제 못했는데 어떻게 해요?(그럴까 봐 1주일 전에 공지한 거란다. 지금부터 하면 되지.)


으레 대충 넘어가겠지 하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당연히 안 해도 되는 것처럼 느껴서는 안 된다. 어떤 이는 방학에 아이들이 학원 다니느라 얼마나 바쁜데 하며 무슨 방학 숙제냐 하겠지만 또 열심히 숙제를 한 아이들 입장에서는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방학 숙제를 검사하면 왜 검사하냐, 검사를 안 하면 왜 검사 안 하냐는 말을 듣기 때문에 어차피 민원을 들을 바에는 나의 교육적 소신대로 밀고 나간다.


요즘의 방학 숙제는 어렵지도 않다. 우리 때는 '탐구생활'이라고 두꺼운 워크북을 숙제로 해야 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미션식으로 주어지는 숙제를 2~3개 정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면, 일주일에 2-3번 운동하고 소감문 쓰기, 집안일 도와드리고 소감문 쓰기 같은 것들이다. 조금 어려운 것이 있다면 부족한 공부 보충하기나 문제집 풀기 정도이다.


아이들도 긴 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하며,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해도 무너지는 것이 방학이지만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행동을 결과물로 만들어 내는 작업이야말로 훌륭한 공부이기에 사소한 방학 숙제라도 여름방학에는 꼭 검사하는 편이다. 결과물을 제출하지 않더라도 방학 동안 집안일을 여러 차례 도운 아이도 훌륭하지만 그 과정과 소감을 글로 정리해 본 아이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방학 숙제 검사는 평가가 아니다. 그보다는 20여 일의 긴 시간과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는 경험을 했는지에 더 큰 의미가 있다.




학생들의 질문에 몇 개의  답을 하고 나니 시야에 놀고 있는 딸이 보인다.


"방학숙제 다 했어?"

"방학숙제?"


방학식날에는 가정통신문을 읽으며 이런 숙제를 하겠다고 형광펜으로 밑줄 긋고 한 개 더 해도 되냐던 딸은 그 시간 이후로 본 적이 없다. 나도 참 한심하다. 우리 반 아이들 걱정만 하고 정작 내 딸 걱정은 안 했다. 따지고 보면 방학 첫날 아이가 밑줄 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방학 동안 했다. 그러나 아까 말한 대로 정리하는 과정을 안 했으니 이제 그것을 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아이는 방학 숙제라는 소리에 입이 삐죽 나왔다.


"방학 숙제를 어디에 해야 되는데?"

"종이에."

"무슨 종이?"

"하...."


엄마의 깊은 한숨을 들은 딸아이는 눈치가 제법 있는 편이라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종합장을 들고 나온다.


"여기다 하면 되지?"

"그래."



시작하니 여백도 많긴 하지만 그림을 열심히 그려 그럴듯하게 숙제를 한다. 하면 되지 않냐고 잘했다고 칭찬해 준다.




이제 나를 되돌아본다. 문득 아이들에게 공언했던 1일 1글쓰기가 생각났다.




 그때만 해도 열몇 개만 쓰면 100개를 채우는 시점이라 의욕이 불타올랐는데 역시 나도 방학의 수렁에 빠진 모양이다. 남 탓을 하자면 방학이라 엄마로서 바빴다고 말하고 싶다. 세어보니 7개의 글을 썼으니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1일 1글쓰기를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래서 이렇게 개학을 9시간 앞둔 시점에 밀린 방학 숙제 하듯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시, 방학의 마지막 날은 밀린 방학 숙제다.


다음 방학에는 숙제를 꼬박꼬박 해야겠다.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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