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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흔한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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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Mar 17. 2024

선생님이 책임지세요.

얘들아....나...나 말이니? 

"선생님이 그냥 책임지세요."

"저는 못해요."


아이들의 아우성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만다.


"선생님이 책임지라고?"



 




책임을 못 지겠다는 아이들은 대뜸 선생님보고 책임을 지라고 한다. 학기 초부터 때아닌 책임공방으로 학급에 큰일이 일어났나 궁금할 수 있겠지만 책임지라는 것은 바로 학습물품이다. 손바닥만 한 보드판에 수성 마커로 글씨나 그림을 썼다 지울 수 있는 물건이다. 이것의 활용도를 따지자면 각종 퀴즈에 사용되는데 한눈에 아이들의 답을 파악할 수 있어 유용하게 쓰인다. 자석도 내장이 되어 있어 칠판에 붙였다 떼었다 하며 생각을 확장하기도 하고, 구분 짓기도 하고, 마인드맵으로도 쓰이는 만능 꿀템이다. 이때까지 아이들은 칠판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자기만의 썼다 지웠다 하는 보드판을 호시탐탐 노렸고, 이것을 오랫동안 써야 하는 나는 그야말로 애! 껴! 서 사용했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1년 동안 나눠주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는데, 올해 큰 결심을 하고 1년 동안 서랍 속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자 하고 나눠 주려고 하였다. 4학년이라 수업시간에 퀴즈도 많이 풀 텐데 작년에 비해 태블릿을 자주 쓰지 못할 것 같아 생각한 아이디어였다. 



"얘들아, 선생님이 이 보드판이랑 펜을 나눠줄 건데 1년 동안 잃어버리지 말고 잘 썼다가 5학년 될 때 선생님 주세요."


그러자 바로 손을 번쩍 드는 아이가 있다.

"선생님! 저는 안 나눠주시면 안 돼요?"

"응? 왜?"

"저는 제가 갖고 있으면 뭐든지 사라져요. 선생님이 갖고 있어 주세요."


이 반응은 예상 못했기에 적절한 답을 찾는데 이곳저곳에서 

"저도요."

"저는 신기하게 서랍에만 넣으면 물건이 없어져요."

"선생님이 책임졌으면 좋겠어요. 잃어버려도 선생님이 책임지면 되잖아요. 저는 책임 못 져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한 번도 이런 반응은 없었다. 계속 손에 쥐고 있으라 한 것도 아니고, 책상 서랍 속에 있는 바구니에 넣었다가 다 쓰면 넣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썼다 지웠다 할 수 있는 만능 아이템, 쉬는 시간에 종이 대신에 그림도 그릴 수 있고, 지우기도 간편하다. 

이런 물건을 왜? 너희는 갖기 싫다는 거지? 


당황한 교사는 어버버 하다가 생각해 보겠다 하고 나눠 주지도 못한 채 물건을 책상 위에 올려둔다. 


'뭐지? 이런 것은 하찮다는 것인가? 요즘 아이들은 너무 풍요로워.'

'아니면 내가 맡은 아이들이 바로 그 알파 세대? 작년 아이들도 알파 세대인데 이렇지 않았는데. 이 아이들이 찐인가?'

'자기 물건 잘 챙기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소유욕보다 책임질 걱정이 큰 건가?'


이 사태 파악, 아니 원인을 파악해 보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지만 어쨌든 또 다른 세대와 만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아무튼 오랜만에 만난 4학년 아이들 덕분에 난 책임져야만 한다. 저 보드판을. 

괜히 책임지라고 하니까 책임지기 싫어지는 요상한 마음을 가진 채 저 보드판을 책임지는 책임자가 되고 말았다. 책임자라 잃어버리면 안 되니 잘 챙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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