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이젠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다. 어제 저녁 식사시간에는 4학년을 1년 더 해보는 게 낫겠다고 했다가 갑자기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오늘 아침에는 5학년을 하겠다는 아내는 내일이면 다시 새로운 학년 이야기를 꺼낼 것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찬바람이 불면 내년 학년에 대한 염려와 고민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참으로 비효율적인 것이 진짜 희망에 그치는 경우가 많으나 내년 1년이 무탈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이런 과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런 고민을 약 한 달 앞당긴 이가 있으니 바로 교감선생님이다. 지난주 교실로 갑자기 찾아오신 교감선생님은 무방비 상태의 내게 질문을 던지셨다.
“혹시 내년에 부장 할 생각 있어요?”
“아니요.”
“왜 부장도 해봤으면 하면 잘할 텐데.”
‘네. 제가 부장을 해봐서 절대 못하겠어요.’
지난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의 다이렉트 면담에서도 철저히 못하겠다고 했으나 그 학교를 떠날 때까지 부장을 못 벗어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엔 나도 물러서지 않고 못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코로나 시절에 부장을 하면서 겪은 사건을 이야기하면 말 그대로 책 1권은 뚝딱이다. 해당 지역 코로나19 최초 초등학생 감염자가 우리 학교, 우리 학년, 우리 반 학생이었던 것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기상천외 스펙터클 대서사극이다. 그러나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던 정말 힘들었던 학년 부장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렇게 교감선생님의 행차로 시작된 내년도 업무, 학년 이야기는 벌써 막이 올랐고 동학년 선생님과 하루에 한 번쯤은 답도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어떤 것도 지내보기 전에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반 배정과 업무이기에 우리는 심혈을 기울여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그러나 시시각각 업데이트 되는 고민의 늪에서 홀로 여유로운 이가 있으니 바로 내년 휴직 예정 교사다.
잠시 시끄러운 학교를 떠나 휴직을 하는 것도 부러운 데 머리 싸매며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제일 부럽다. 휴직 계획이 없는 이들은 오늘도 내일도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바쁘다. 최선의 선택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차선이 안되면 차차선이라도… 부디 2025년의 내게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