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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흔한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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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Nov 18. 2024

가을아 잘 가.

가을이 되면 꼭 하는 활동이 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커다란 광목천에 색깔 카드를 동그랗게 펼쳐놓고 최대한 비슷한 색의 자연물을 찾아오는 것이다. 단풍이 정말 예쁘게 들었을 무렵 운동장으로 준비물을 챙겨 나가서 바닥에 하나씩 펼쳐 놓으면 아이들의 궁금증이 폭발한다.


광목천을 깔고 색깔 카드를 하나씩 얹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활동인지 가늠해 보기 시작한다. 이 활동의 묘미는 모아진 자연물을 보고, 이들의 조화로움을 보는 게 최고이나 오늘은 전날 비가 온 탓에 바닥이 젖어 다르게 진행해 보았다.


“우리가 보는 단풍이 다 비슷한 색처럼 보이겠지만 자세히 보면 색이 다다릅니다. 노란색도, 빨간색도, 다른 색들도 조금씩 다 달라요. 선생님이 색깔 카드를 뒤집어서 가지고 있으면 짝과 함께 뽑아서 그 색과 최대한 같은 색을 찾아오는 거예요. 할 수 있죠?”


아이들은 보물 찾기를 하게 되는 것 마냥 신이 난다. 그러나 생각보다 똑! 같은 색을 찾기 쉽지 않은지 대충 빨간색 잎을 가져와서 비슷하다고 내민다.


“이건 이 빨간색 카드랑 비슷한 것 같은데? 다시 한번 찾아봐. 빨리 찾지 말고, 꼼꼼하게 찾아봐.”

“이 정도면 비슷한 거 아니에요?”


아니,라는 대답대신 다시! 를 외쳐준다. 아이는 다음에는 꼭 성공하리라는 결심을 하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간다. 그렇게 몇 번의 다시를 거쳐 모인 잎들은 제법 카드의 색깔과 같다. 아이들이 이것을 위해 땅도 보고, 하늘도 보며 찾아다녔겠지. 찾는 게 어려워 약간은 심술이 났지만 찾아낸 기쁨이 더 커서 아이들은 금세 얼굴에서 짜증을 빼고 해맑아진다.


미션을 통과한 아이들은 잠시 자유시간을 갖고, 잎들이 날아갈까 봐 걱정되어 사진으로 남기기로 한다. 색이 자세히 보이도록 나눠 찍고 있으니 한 아이가 들릴 듯 말듯한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선생님… 파노라마로 찍으면 되는데…”

“아… 그러니? 그럼 네가 찍어줄래?”



핸드폰을 받아 들고 자기 폰처럼 쓱쓱 하더니 파노라마샷을 찍고 넘겨준다. 한 번에 찍으면 될 것을 선생님이 그렇게 나눠 찍는 게 못내 답답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또다시 웃음이 났다. 아이가 찍어준 사진을 보고 나서


“우와, 진짜네! 고마워.”


인사를 건넨다. 아이는 이번에도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보이고선 친구들이 있는 운동장으로 뛰어간다.

나만의 시그니처 가을 활동까지 하고 나니 진짜 가을을 보내줘야 할 것 같다. 예뻤던 가을아, 잘 가.






이렇게 오늘의 가을이 간다. 아니 올해의 가을이 간다. 진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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