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가 많이 나지는 않아도 최근 정리에 관심도가 높아지다 보니 닦고 정리하는 횟수가 늘었다. 거실이나 방은 정리하면 티도 나고 유지가 되는 편이지만 하루에 2번은 사용해야 하는 주방은 매번 정리해도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느낌이다.
대단한 요리를 만드는 것도 아닌데 국 냄비 하나에, 메인요리라도 하려면 궁중팬은 나와줘야 하고, 계란 프라이가 추가되면 프라이팬도 인덕션 위를 가득 채운다. 양파나 버섯이라도 추가로 넣는다면 칼도마도 나와야 하고, 먹음직스럽게 보이려 대파와 다른 야채도 조리대를 점령한다. 이것이 번거로워 샐러드라도 하려면 채반도 필요하고, 정성을 더 기울이면 야채탈수기까지 조리대를 점령한다. 식사시간, 길어봐야 30분인데 식사 준비를 위해 조리대는 이미 만석이다. 요리를 잘 못하는 사람일수록 준비가 거창하고, 과정은 복잡하다. 요리사들은 그럴듯한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조바심이 없고, 중간중간 정리를 해서 주방을 깔끔하게 유지하는데 초보 요리사는 여전히 분주하기만 하다.
그래도 매일 늘어놓고 치우는 이 과정을 지금까지는 귀찮은 일, 하기 싫은 일로 치부했다면 요즘에는 정리 동아리의 일원으로서 주방 정리를 받아들이고 잘 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때로는 식기세척기의 힘을 빌기도 하고, 요리 중간중간 정리를 하는 고급 스킬을 뽐내기도 한다. 그러나 내게 주방 정리의 가장 큰 복병은 요리도, 설거지도 아닌 바로 음식물 쓰레기다. 사는 곳에 따라 처리 방법이 다른데 예전 아파트에서는 음식물 종량제 봉투에 넣어 1층에 마련된 쓰레기처리함에 넣어야 했다. 현재 아파트는 지정된 봉투가 없고 음식물을 처리함에 넣어 무게로 관리비에서 차감하고 있다. 방법이야 어쨌든 집 밖을 나가 지정된 함에 버려야 한다. 그럼 이 쓰레기를 가지고 나갈 사람이 누구? 바로 나다. 분리수거는 할 수 있지만 음식물 쓰레기는 절대 못 버리겠다는 남편과 사는 운명으로 이 집의 음식물 처리 담당자는 나다. 신혼 초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헛구역질을 해댄 남편을 보고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사람이 사는데 절대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음식물 쓰레기는 아마 다른 가정에서도 골칫거리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서도 특히 여름이 되면 음식물 처리기에 대한 관심도가 항상 최고조가 된다. 수박을 좋아하는 딸 덕분에 수박을 사 오면 수박파티도 열리지만 수박 껍질 파티도 열린다. 며칠 전 첫 수박을 개시한 후 다시 음식물 처리기에 대한 욕망이 타오른다.
"우리 이번엔 진짜 음식물 처리기 살까?"
"그래. 이번엔 진짜 사자!"
"근데 아직도 비싸네."
"비싸도 사."
자신이 도울 수 없는 영역이라 남편도 비싸더라도 올해는 사자고 재촉한다. 가격도 합리적이면서, 냄새도 안나는, 품질도 좋으며 사용도 편리한 그것을 사야 한다. 몇 년 동안 해내지 못했던, 결국 구매까지 이어지지 못했던 음식물 처리기를 사야만 한다.
미니멀의 가치를 실현하려 애쓰느라 주방 위에 더 이상 아무것도 올려놓고 싶지 않지만 이것만큼은 꼭 필요하다. 있는 것도 정리해야 할 판에 무언가를 또 사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도 물건은 늘어나지만 깔끔하고 청결한 주방을 위해서는 음식물 처리기가 꼭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미니멀은 하고 싶지만 음식물 처리기는 꼭 사고 싶어.'
결국 마음의 소리에 이끌려 며칠을 방황하며 인터넷 쇼핑몰을 헤매다 결국 들이고 말았다. 아차차, 모셔오고 말았다. 오늘은 음식물 처리기님이 우리 집에 오신 지 이틀째. 냉장고 속 남은 잔반을 끌어모아 연이틀 돌려보고 냄새가 안나는 것을 확인한 후 안도감과 행복감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올여름은 초파리랑 싸우지 않아도 된다. 그거면 됐다.
물건을 정리하고 얻어지는 평안도 있지만
물건을 사야지만 얻어지는 평안도 있다.